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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20년 ③양극화…깊어진 갈등] 드러난 ‘분수효과’의 허상…곳곳 양극화로 ‘환란 후유증’
뉴스종합| 2017-11-28 11:26
강해진 생존욕구 효율성만 추구
불안한 일자리로 소득 불평등화
중기-대기업간 임금격차도 심화

경제성장 과실, 자산시장에 쏠려
한국경제 성장 발목잡는 주요인
성장률 제고·구조개혁 등 과제


공짜 점심은 없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은 긴축 재정과 기업 구조조정 등이 전제였다. 부채로 살을 찌웠던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생살을 도려내야 했다. 대규모 감원의 칼바람이 불었다. ‘평생직장’의 꿈도 물거품이 됐다.

민주화와 감원한파를 겪으면서 노동조합의 철옹성은 더욱 높아졌다. 노동집약적 산업들은 싼 임금의 신흥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겨갔다. 임금 탄력성과 직결괴는 노동유연성은 노조 밖 비정규직의 몫이 됐다. 일터를 나와 생존의 고비를 겪은 근로자들은 임금, 처우, 근무조건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란 원칙은 누구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불평등의 일상화’ 즉 ‘양극화’가 시작됐다.


1997년 전까지 양극화는 ‘중화학공업과 경공업의 양극화’,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라는 표현 정도에나 쓰였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넘기며 양극화는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로 자리잡았다. 불안한 일자리는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졌고, 소득 분위별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양극화의 불길을 더욱 거세게 만들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풀린 천문학적 돈은 자산시장을 자극했고, 자산을 많이 보유한 부자와 대기업들이 수혜를 입었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소득 5분위(50%)의 시장소득이 46% 가량 증가하는 동안 소득 1분위(최저 10%)의 시장소득은 4% 늘어나는데 그쳤다. 같은 기간 상대적 빈곤율은 16.6%에서 19.5%로 증가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격차도 더욱 커졌다. 중소기업 임금 수준은 1997년만 해도 대기업의 77.3%였지만 지난해에는 62.9%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중소기업을 기피하기 시작했고, 생산성이 하락했다.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 지수는 2008년 106.4였던 것이 2014년에는 105.8로 0.6포인트 하락했다. 대기업은 같은 기간 노동생산성 지수가 320.6에서 363.8로 올랐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대기업들은 더욱 ‘고효율’을 추구했고, 이는 협력업체들에는 원가절감 압력으로 작용했다. 이는 양극화의 악순화 고리를 더욱 강화시켰다.

2009년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과 ‘낙수효과’ 정책은 양극화 고착의 결정타였다. 대기업이 돈을 벌면 중소기업과 개인에 그 혜택이 돌아갈 것이란 논리다. 하지만 현금은 대기업 곳간에만 쌓였다. 중소기업들은 원자재값 부담을, 개인들은 치솟는 물가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갑질’이라는 단어가 또다시 세계적인 ’한국어‘가 됐다.

산업간 양극화도 심각한 수준이로 악화됐다. 최근 반도체의 ’나홀로 호황‘은 대표적인 사례다. 대기업 간에도, 심지어 같은 기업 집단 가운데도 양극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양 극단간 갈등도 커졌다. ‘보수’와 ‘진보’로 나뉜 정치권의 갈등은 양극화를 삼키며 그 골이 더욱 깊어졌다.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소득 양극화는 부동산과 증시호황을 거치며 자산 양극화를 고착시켰다. 저성장으로 임금상승이 정체된 상황에서 자산가치만 상승하면서 이제 자산가와 근로자의 격차는 넘어서기 어려울 정도다. 임금소득만으로는 집 한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저금리가 당장 부족한 소득의 공백을 메웠다. 빚을 내서 집을 사고, 은행에서 전세보증금을 빌렸다. 빚을 내서 생활비를 충당하고,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냈다. 그나마 저금리여서 당장의 이자는 감당할 만 했다. 사상 최대의 가계빚에도 불구하고, 연체율은 사상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비정상적 저금리에서의 탈출을 선언했고, 한국은행도 사실상 기준금리인상을 선언했다. 소득이 늘지 않는 한 이자부담은 날로 높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제 양극화는 한국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IMF는 지난 14일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을 올해 초에 잡았던 2.7%에서 3.2%로 상향 조정하면서도 양극화에 따끔한 충고를 내놨다.

양극화에 대한 대처와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 구조개혁 등이 수반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장기성장을 이루지 못할 것이란 진단을 내놨다. 양극화는 복지에 대한 수요를 높인다.

경제협력기구(OECD) 가운데 사회안전망이 가장 취약한 대한민국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뜨거워진 ‘성장’과 ‘분배’의 갈등은 양극화의 또다른 양상이다. 남북간 정치적 분단에 이어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간의 경제적 분단이 현실화되고 있다.

도현정 기자/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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