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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엄익춘 국립환경과학원 연구관]4차산업혁명 시대의 화학물질 안전성 평가
뉴스종합| 2017-12-21 11:14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화학제품의 안전성 평가가 얼마나 중요한 지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 올해 11월을 기준으로 정부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에서 폐손상 조사와 판정이 완료된 신청자는 2547명이며, 이중 피해를 인정받는 피인정자는 404명까지 늘었다.

화학물질에 의한 큰 규모의 피해 사고가 발생하면서 우리 생활 주변 화학제품의 안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화학물질은 약 4만4000종으로 안전성 정보를 확보한 물질은 15%에 불과하다. 이것은 동물실험을 선호하는 고전적인 평가방식만으로는 화학물질의 안전성 확보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동물 실험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 높은 비용, 동물 복지 등 보다 복합적인 인식이 확대되면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동물을 이용한 과도한 독성시험을 줄이는 추세다. 동물을 이용하지 않은 대체시험법 정착을 위한 제도 마련 및 연구개발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동물실험에 비해 축적된 데이터가 적어 신뢰도 검증이 불충분할 우려가 있고, 모든 종류의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은 이미 2013년부터 화장품 원료 및 제품에 대한 동물실험 규제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2008년부터 ‘ToxCast (Toxicity Forecaterㆍ독성 예보관)’라고 불리는 중장기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동물 대신 컴퓨터, 세포, 단백질체를 대상으로 유해 영향을 평가 또는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 중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인공지능(AI)과 빅 데이터 기술을 기반으로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유해성을 예측ㆍ예방하는 관련기술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올해 초 밝힌 바 있다.

최근 우리사회는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국가적인 투자, 각 분야의 혁신 지원 방안, 기반 조성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화학물질 안전성 평가의 패러다임을 혁신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생물학, 생물공학, 화학 및 IT 기술을 융합한 ‘컴퓨터 독성학(Computational toxicology)’ 분야가 첨단예측ㆍ대체 독성평가기술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생물정보학 툴(tool) 및 컴퓨터 시물레이션(in silico)을 이용하여 분자수준의 유전체 자료를 종합 분석하고, 개체수준의 독성발현 현상을 예측ㆍ해석하는 기술이 이 범주에 해당한다.

환경부를 비롯한 정부에서 제4차 산업혁명에서 출현하는 신기술을 이용한 선진적인 독성 평가 기술 확보도 필요하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일부 연구개발(R&D)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거나 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시의적절한 것이다.

인공지능, 빅 데이터, 생명공학과 첨단 정보통신(ICT) 기술을 기반으로 현재의 화학물질 평가 방식을 21세기 미래형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국가의 경쟁력을 한층 높이고, 미래 독성ㆍ예측 프로그램 전략 수립에 지혜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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