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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한 인간을 ‘자살’로 이끄는가
라이프| 2017-12-22 11:32
伊사회학자 바르발디 ‘자살의 사회학’
뒤르켐의 ‘사회적 자살론’ 뒤집은 역작
사회적 요인보다 개인의 의도에 초점

중세유럽 기독교 사회에선 죄악·범죄
같은 시기 亞선 영웅행위·명예로 추앙

근대 이후에 개인의 권리로 자살 인식
여성·약자들 복수·저항의 수단 되기도


1774년 출간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계몽주의 문학의 엄격과 이성에 숨막혔던 젊은이들의 감성을 해방시키면서 유럽을 흔들어놓았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베르테르의 죽음을 모방해 권총 자살을 시도하는 바람에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사실은 유명하다.

모방 자살의 유행은 낭만적인 소설의 영향이 크지만 무엇보다 자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데 있다. 사실 17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자살은 죄악이자 중대한 범죄였다. 유럽 기독교사회에서 자살은 영혼과 육체의 이중적 살해로, 신성모독으로 여겨졌다. 자살 후에도 재판에 회부돼 교수형에 처하는가 하면 재산을 몰수하고 남겨진 가족들은 굴욕을 당해야 했다.

“자발적 죽음에 대한 이러한 도덕적 접근 방식에 위기가 온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하지만 삶, 자유, 재산에 대한 개인의 권리 뿐 아니라 세상과 작별하는 때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 눈뜬 것이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자살의 사회학’에서)

이런 분위기는 16세기 중엽과 17세기에 오면 서서히 바뀐다. 토머스 모어, 몽테뉴, 몽테스키외 등이 작품을 통해 자살에 대한 입장을 드러내면서 귀족과 지식인, 부르주아 사이에서 자살을 옹호하는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마르치오 바르발디의 신간 ‘자살의 사회학’(글항아리)에 따르면, 17세기 후반 당시 영국에선 상류층을 중심으로 자살이 증가하기 시작해 영국병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파리의 경우, 1793년께에는 인구 10만명 당 230명으로 급증한다. 목숨을 끊을 자유가 개인의 새로운 권리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자발적 죽음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를 사회에서 찾은 학자는 에밀 뒤르켐(1858~1917)이다. 뒤르켐은 다양한 연구를 토대로 쓴 1897년 ‘자살론’을 통해 자살이 개인의 유전적 요인이나 정신병 등과 관련이 없음을 밝힌다. 뒤르켐에 따르면 자살률의 변화는 사회적 통합과 사회적 규제와 관련이 있다. 사회적 통합 정도가 낮을 때, 즉 개인이 사회로부터 소외되면 이기적 자살이, 통합정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이타적 자살이 발생한다. 또 사회규제가 너무 약하면 아노미적 자살이, 사회적 규제가 과도해지면 숙명적 자살이 나타난다.

한 세기 넘게 지배해온 이 자살 이론을 새롭게 쓴 이가 이탈리아 사회학자 마르치오 바르발디다. 바르발디는 뒤르켐의 이론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자살률의 변화와 역사적 시기, 국가, 사회 집단 간의 자살률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부적절하다는 점을 깨닫고 비교역사적으로 이 주제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뒤르켐의 이론대로라면 현대 사회로 올수록 집단에 대한 개인의 종속이 약해지면서 이타적 자살이 사라지고, 사회적 통합과 규제의 끈이 느슨해지면서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적 자살이 폭발적으로 증가해야 하지만 20세기 마지막 40년 동안에는 이와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졌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던 이타적 자살은 오히려 중가했고 서유럽에서 가파르게 치솟을 것으로 추정된 자살률은 꾸준히 떨어지는 추세다. 서로 반대로 움직이는 뜻밖의 결과는 뒤르켐의 한계를 보여준 셈이다.

바르발디는 지난 40년간 많은 나라에서 나타난 자살동향과 역사학, 인류학, 사회학 등을 통해 밝혀진 방대한 새 흐름을 수용, 새로운 자살이론을 전개해 나간다. 바르발디는 뒤르켐의 이론을 일부 수용해 자살을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공격적 자살, 무기로서의 자살로 분류한다.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은 누군가를 위한 자살과 관련돼 있다. 즉 자살을 하게 만든 사회적 원인이 아닌 ‘개인’의 의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공격적 자살과 무기로서의 자살은 보복으로서의 자살이다. 공격적 자살은 개인적인 이유로 타인을 해치고자 하는 자살이고 무기로서의 자살은 가미카제와 같이 종교적· 정치적인 이유로 하는 자살이다.


저자는 유럽 뿐아니라 중국, 인도 등 다양한 나라의 자발적 죽음과 현대의 자살 특공까지 비교역사를 통해 자살의 다양한 층위를 보여준다.

특히 유럽과 아시아의 자살률의 차이를 문화적 변수에서 찾아낸 점이 흥미롭다. 가령 12세기 일본에서는 전쟁에 패하면 할복을 하고 지도자를 따라 순사했지만 이 무렵 유럽에서는 자살은 불명예, 가족의 몰락을 의미했다. 신념과 종교적 믿음 등이 자살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성별로 볼 때 서구에서는 항상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훨씬 높았지만 아시아에서는 여성의 자살이 많았다. 수절을 지키기 위해, 전쟁 시 약탈자에게 복종하지 않기 위해, 성폭행을 당했을 때 여성들은 자신의 결백, 자살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분명하게 지적하기 위해 자살을 택했다. 결혼 여부도 자살빈도에 영향을 미친다, 유럽에서는 결혼이 항상 자살을 억제시키는 역할을 했는데, 남성의 경우, 더 효과가 컸다. 반면 오늘날 아시아에서는 결혼이 자살을 막지 못한다는 데이터가 있다.

또한 과거에는 중산층, 귀족층, 지식층의 자살률이 높았지만 최근 수십년 동안 서구에서 자살은 매우 힘든 문제를 안고 있지만 해결할 자원이 별로 없는, 사회적으로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더 많았다.

저자는 자살이 일어났을 때 서구에서는 ’왜‘에 초점을 맞춰 피해자의 정신상태나 특정 사건에서 그 이유를 찾는 반면, 아시아에서는 ’누가 이 지경으로 몰고 갔는가, 누구 책임인가‘를 따진다는 차이도 예리하게 짚어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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