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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거니, 명주가 되다]크로아티아 이민자, 최고의 와인메이커가 되다…마이크 그르기치
뉴스종합| 2017-12-31 09:30
-1976년 ‘파리의 심판’ 주인공
-전설적인 미국 와인으로 선정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어떤 일이든 자신의 이름을 건다는 것은 굉장히 책임이 막중한 일이다. 자신과 가문의 선대, 후대에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여기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오로지 술 하나에 인생을 건 사람들이 있다.

기네스, 조니워커, 스미노프 등 한번쯤 들어본 이 술들은 사실 사람의 이름이다. 누군가에게 ‘인생술’로 칭송받는 명주 중에는 창시자의 이름을 건 술들이 상당히 많다. 이 술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수백년 간 이 술이 후대에 이어질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한 잔의 술을 위해 인생을 건 사람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본다.

그르기치 힐스 설립자 마이크 그르기치

<20>그르기치 힐스 에스테이트=1976년 당대 최고의 와인이었던 프랑스 명가의 와인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던 미국 와인. 이른바 ‘파리의 심판’으로 불리는 이 사건의 주인공 중 한명인 ‘마이크 그르기치(Mike Grgich)’는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전세계 와인업계에 알린 후 자신의 이름을 딴 ‘그르기치 힐스 에스테이트(Grgich Hills Estate)’의 문을 연다.

미국 나파밸리에서 전설을 만들어낸 그르기치 힐스 에스테이트의 창립자 마이크 그르기치(Mike Grgich)는 1923년 크로아티아의 한 포도 재배 농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주신 와인을 섞은 물을 마시며 자랐던 그는 대학에서 와인 양조학을 배우며 와인메이커로서 밑거름을 쌓는다.

하지만 공산주의 통치 아래서 꿈을 쉽게 이룰 수 없다고 느꼈던 그는 1954년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이주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 그르기치는 미국에 가고자 캘리포니아 와인협회에 구직광고를 내고 마침 이 광고를 본 수버랭 셀라(Souverain Cellars)의 오너 리 스튜어트(Lee Stewart)가 와인메이커 자리를 제안하게 된다. 1958년 미국 나파밸리에 입성했던 마이크 그르기치는 수버랭 셀라와 크리스찬 브라더스(Christian Brothers) 등 미국 와인의 선구자로 불리는 와이너리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후 볼리우(Baulieu) 와이너리에서 미국 전설의 와인메이커 안드레 첼리체프(Andre Tchelistcheff)에게 사사했으며, 당대 최고의 와이너리 로버트 몬다비에서 선임 양조가(chief enologist)로 활동했다.

그르기치 힐스 아메리칸 캐년 포도밭
그르기치 힐스 카네로스 포도밭

파리의 심판 사건을 계기로 유명세를 쌓은 마이크 그르기치는 이민 20년 만에 자신의 와이너리를 갖고자 했던 소망을 이룩하게 된다. 그르기치 힐스의 와인들은 초기 생산부터 인정을 받았다. 무엇보다 그르기치가 예술작품을 만들 듯 공을 들인 샤도네이는 ‘샤도네이의 제왕(King of Chardonnay)’이라는 애칭을 얻으며 미국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렸다.

그르기치는 “포도 알이 터지는 소리를 들으면 포도의 당도를 알 수 있다”며 자신은 그저 자연과 포도나무가 내는 소리에만 귀 기울일 뿐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연이 일을 하게 내버려두고, 사람은 최소한의 개입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철저한 철학에 따라 그르기치 힐스의 와인들은 100% 유기농 인증을 받은 포도와 바이오 다이나믹 기법으로 만들어진다. 또 와이너리의 모든 전력을 태양광 에너지를 통해 얻어 사용한다. 마이크 그르기치는 미국 와인산업의 발전에 기여한 큰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CIA 선정 ‘빈트너 홀 오브 페임(Vintners Hall of Fame)’에 헌액됐다.

그르기치 힐스의 샤도네이가 대형 이벤트로 보수적인 유럽 와인업계를 경악시켰다면 그르기치 힐스의 카버네 소비뇽은 전통적 양조방식이 낳은 깊은 풍미로 인해 애호가들의 추종을 받는다. 프랑스 유명 소믈리에들이 집필한 ‘전설의 100대 와인(100 Vins de Legende)’에서 전설적인 미국 와인으로 선정된 바 있는 이 와인은 우아함, 섬세함, 미묘함, 복합성이 최고의 절정에 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르기치 힐스 와이너리 입구
그르기치 힐스 나파 밸리 샤도네이

거대 미국 자본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르기치 힐스는 가족경영을 추구하며 양질의 와인을 일관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 와이너리는 러더포드, 욘트빌 등 나파밸리의 핵심적인 포도밭에 366에이커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해마다 약 7만 상자의 와인을 생산한다. 모든 와인은 100%자가 수확포도 만을 사용하고 양조 및 병입까지 모든 절차가 와이너리 내에서 이루어진다.

국내에서는 와인수입사 나라셀라를 통해 나파밸리 지역의 카버네 소비뇽, 멀롯, 진판델 등 레드 와인 3종과 샤도네이 퓌메 블랑 등 화이트 와인 2종이 수입되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그르기치 힐스 나파 밸리 샤도네이’는 그르기치 힐스의 상징이 된 와인이다.

‘그르기치 힐스 나파 밸리 샤도네이’는 서늘한 카르네로스와 아메리칸 캐년에서 재배되는 포도로 비젖산발효를 통해 신선한 산도, 다층적인 감귤류 풍미가 매혹적인 맛을 가진 와인이다. 청사과, 멜론의 과실의 사랑스러운 향이 미네랄 풍미와 함께 어우러져 복합적인 모습을 보인다. 깨끗하면서도 명확한 풍미와 긴 여운은 프리미엄 화이트 와인의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 신선한 해산물, 로스트 치킨, 구운 돼지고기, 크리미한 치즈 등과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

yeonjoo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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