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회사내 대리가 밖에선 과장 ‘가짜명함’ 돌리는 직장인들
뉴스종합| 2018-01-22 11:54
수직적 사회 ‘직급이 곧 영향력’
“거래처 무시 당할라” 꼼수활용

#1. 중견기업 주임 강모(30) 씨는 얼마 전 거래처 미팅을 갔다가, 선임에게 큰 꾸중을 들었다. 강 씨가 선임인 A 씨의 호칭을 잘못 불렀기 때문이다. A 씨는 ‘대리과장’으로 통용되는 가짜 과장이다. 사내에선 대리, 거래처에서는 과장으로 불린다. 강 씨가 미팅자리에서 A 씨를 ‘대리’로 부르자 미팅 분위기는 싸해졌다. 강 씨는 미팅 분위기를 망쳐놓은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2. 신입사원 최모(27ㆍ여) 씨는 회사에서 자신의 첫 명함 직급을 대리로 할 것을 권유받았다. 외부 미팅이 잦은 부서에 속한 최씨였기에 “그냥 사원이면 밖에 나가서 무시당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가 제시한 이유였다. 최 씨는 이를 거절했다. 괜히 대리 직급을 받았다가 행여 밖에서 실수라도 하면 “대리가 뭐 그렇냐”는 비판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여전히 일선 기업에서는 ‘가짜 과장’, ‘가짜 부장’ 등 ‘가짜 직급’ 체계가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사회의 수직적인 조직구조가 낳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로 거래처를 상대하는 업체나 부서, 고객을 상대하는 일이 많은 서비스 업종들이 이런 가짜 직급을 활용한다. 주된 이유는 ‘밖에 나가서 무시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력적체가 심한 기업인 경우, 또는 능력이 부족해 진급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바뀐 명함을 들고서 거래처를 찾는다. ‘중간관리자’인 과장으로 진급 문이 좁은 대기업 B 사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대리과장’제도를 적극 운영 중이다. 연한이 차면 모든 대리직원을 과장으로 진급해주는데, 실제 과장진급자와 아닌 경우는 월급으로만 차이가 구분 지어진다. 당사자와 회사만이 자신이 ‘진짜 과장’인지를 알 수 있는 구조다.

사회관계 속에서 직위나 직책이 큰 역할을 하는 것도 가짜 직급이 생기는 이유다.

캐나다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특별한 대화 없이도 상대방의 사회적 입지를 확인하는 ‘잠정적 합의’에 주목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자아연출의 사회학’에서 “일상 생활에는 사람들 사이의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무언의 합의가 있다”며 “개인이 남들 앞에 나설 때,…자신의 인상을 통제하려는 여러 동기가 있다”고 말했다.

직급도 자신의 사회적 인상을 통제하는 한 가지 수단이 된다. 사회속에서 가짜 직급을 통해 보여지는 그 사람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이같은 일이 성행하는 것이다. 특히 수직적인 성격이 강한 한국 조직사회에서는 직급이 많고, 영향력도 큰 만큼 가짜 직급 문화도 성행할 수밖에 없다는 중론이다. 가짜 직급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수직적인 구조임을 방증하는 셈이다.

한국 기업은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임원과 직원급 포함 많게는 13개 이상의 직급 체계를 갖는다. 대형 그룹사를 기준으로 회장-부회장-사장-부사장-전무-상무-이사(상무보)-부장-차장-과장-대리-주임-사원 등이다.

반면 서구 선진국은 비교적 유연한 조직구조를 갖는다. 미국의 경우 크게 6개 직급을 갖추고 있다. CEO(최고경영자), CFO(최고재무책임자) 등을 포함하는 C레벨과 EVP(executive vice presidentㆍ전무이사)-VP(Vice President)-Director(디렉터)-Manager(매니저)-사원 등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유연하게 운영된다. 세계적인 금융기업 골드만삭스의 경우 전 직원의 40%가 VP 직급을 보유하고 있다.

김성우 기자/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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