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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실명제 첫 날 은행 가보니…말만 잘 하면 신규계좌 술술
뉴스종합| 2018-01-30 12:25
적금ㆍ 펀드 등 상품가입용으로
새통장 만들기 크게 어렵지 않아
커뮤니티 ‘조언’들 모두 효과발휘
당황한 은행 “더 엄격히 하겠다”

[헤럴드경제=도현정ㆍ강승연 기자]가상화폐 거래 실명제 시행 첫 날인 30일, 은행 창구는 조용했다. 은행들은 한도계좌 도입 등으로 일찌감치 대비했다. 투자자들은 더 빨랐다. 은행 계좌 확보가 우선인만큼 ‘가상화폐’ 얘기는 쏙 빼고 계좌를 만드는 방안이 물밑에서 오고갔다. ‘뛰는 은행’ 위에 ‘나는 투자자’들이 있는 셈이다.

30일 기자는 서울 여의도의 한 시중은행 지점을 찾았다. 월말 오전 시간이었지만 창구는 비교적 한산했다. 번호 대기표를 뽑자마자 순서가 돌아왔고, 직원에게 “적금에 가입하려 하니 입출금 계좌를 만들어달라”고 말했다. 추천을 받은 모바일 전용 상품에 가입한다고 하자, 직원은 해당적금 전용 입출금 통장을 만들어줬다. 실제 적금 가입은 추후 은행 웹사이트에 접속해 직접 가입하면 된다고 안내했다.

[사진=가상화폐 거래 실명제가 시행된 30일 한 은행 지점의 모습. 이날 은행들은 신규 계좌 개설과 관련한 혼란이 예상됐던 것과 달리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다른 은행을 찾았다. 장기간 사용하지 않은 휴면계좌를 활성화하겠다며 새 통장을 발급받겠다고 했다. 직원은 ‘금융거래 목적 확인서’를 건네며 목적란은 “글짓기하면 된다”고 했다. 나중에 “솔직히 가상화폐 계좌용으로 쓰려 한다”고 고백하자, 관리비나 공과금 이체 등 다른 목적으로 쓸 수 있냐고 되물었다. 이 은행에서 발급된 신용카드 결제계좌 변경을 선택했고 별탈 없이 계좌를 살릴 수 있었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대표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묘수’들이다.

투자자들은 “은행에서 계좌만 확보하면 자체 실명 인증 시스템을 갖춘 거래소에서 가상화폐를 사는건 무리가 없다”며 “계좌 발급 용도를 적금, 펀드 가입이라고 하면 된다”고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었다. 일부는 “창구 직원이 ‘혹시 가상화폐 거래하시려는 것은 아니냐’고 물었지만 아니라고 잡아뗐더니 별 말 없었다”며 ‘무용담’을 자랑했다.

[사진=30일 한 은행 창구에 입출금통장 신규 개설을 엄격히 한다고 소개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 확인은 어렵지만 지난주부터 입출금계좌 개설이 크게 늘었다”며 “실명제 도입 시기에 기존 거래 고객으로 분류되기 위해 투자자들이 계좌를 미리 만들어놓은 것 같다”고 전했다. 다른 은행 고위 관계자도 “고객 혼란을 막기 위해 창구 직원들에게 교육을 철저히 시켰는데 생각보다 고객 문의가 적은 편이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당황하면서 향후 창구 가이드라인 적용을 더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공과금 이체, 신용카드 결제 목적이라고 해도 3개월 이상의 자동이체 내역이나 당행 신용카드 결제 명세서를 가져와야 하는 등 계좌 발급 절차가 까다롭다”면서 “특히 실명제 시행 초반에는 가상화폐 거래 목적인지 까다롭게 살펴볼 예정”이라고 전했다.

sp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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