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일반
겨울철, 전기차로 제주도 여행해보니…‘충전소 찾아 삼만리’
라이프| 2018-02-06 06:45
- 겨울철, 예상보다 빠른 배터리 소모…여행 코스, 충전소 따라 구성

- 충전 카드 다른 충전소에 고장난 충전소도 있어 ‘불편’

- “제주도민도 집에 충전소 없이는 전기차 구입 꺼려”

- 신규 설치 외에도 기존 충전소 관리 시급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시작은 호기로웠다. 전국에서 전기차 충전소가 가장 많은 곳이 제주도라 하니, 이왕 자동차 렌트를 하는 것 전기차를 타고 돌아다니면 좋겠다 싶었다. 나름 자동차 기자인 만큼 겨울철 전기차 배터리 소모가 봄~가을보다 빠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충전소가 많으면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어설픈 지식’이 화근이 될 줄도 모르고 기자는 지난달 20일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길에 올랐다. 3일 내내 기자가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인근에 충전소 있는지 확인해봤어?”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쇠소깍 근처의 한 전기차 충전소. 박혜림 기자/rim@heraldcorp.com
서귀포시 한 대형 마트에 설치된 포스코 ICT 충전기. 별도의 멤버십 카드로만 이용 가능했다.박혜림 기자/rim@heraldcorp.com
1100로 인근의 한 오름 부근에 설치된 충전소를 찾아가는 길목은 가로등 하나 설치되지 않아 무척 컴컴했다. 충전소에도 가로등이 없어 기자와 동행들은 휴대폰 불빛에 의존해 충전구와 커넥터를 연결해야만 했다. 박혜림 기자/rim@heraldcorp.com

20일 오전 제주 국제 공항 인근의 한 렌트카 하우스에서 소형 전기차와 전기차 충전 카드를 인수했다. 처음 시동을 걸고 확인한 ‘주행 가능 거리’는 약 110㎞. 우리의 첫 목적지인 서귀포시의 한 호텔까지 거리는 45㎞였다. 상온에서라면 왕복을 하고도 20㎞는 더 갈 수 있을 만큼의 배터리 잔량이 남아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막상 운전에 돌입하자 배터리 잔량은 기자의 예상보다 더 빨리 떨어졌다. 오르막, 내리막과 구불구불한 와인딩 코스로 이뤄진 1100로를 따라 가다보니 절반 지점에서 이미 주행 가능 거리가 80㎞ 남짓으로 떨어져 있었다. 설상가상 호텔 체크인 시간마저 2시간 뒤라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밖에서 버텨야만 했다.

“호텔 근처 충전소에서 충전 좀 하면서 커피 한 잔 하면 되지, 뭐.”

조수석에 타고 있던 친구가 이렇게 제안하며 뒷자리 친구와 함께 전기차 충전소 앱을 이용해 호텔에서 가까운 충전소를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쇠소깍 쪽에 카페와 충전소가 함께 있었다.

하지만 기자를 비롯한 동행 모두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전기차 충전기가 단 하나 뿐이라는 것이었다. ‘충전시설 하나에 충전 가능한 차량이 한 대’. 그 동안의 기사에서는 알지 못했던 정보였다. 먼저 충전을 하고 있던 차량의 남은 충전 시간이 22분에 불과해 먼저 차를 마시기로 했다. 1시간 반 뒤 충전소가 비자 마침내 차량과 충전 커넥터를 연결할 수 있었다. 충전에 따른 비용은 전혀 없었지만, 완전 충전까지 20분 가량 소요된다는 안내 문구에 반 강제로 쇠소깍을 한 바퀴 둘러봐야 했다. 체크인 시간이 다 돼 주행 가능 거리를 80㎞ 남짓까지 만들어 놓은 뒤 저녁에 다시 충전을 하기로 했다.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기자가 묵는 호텔엔 불행히도 전기차 충전소가 없었다. 때문에 그날 밤 기자와 동행들은 배터리 충전을 위해 충전기가 설치돼 있다는 대형 마트를 찾았다.

“충전 카드가 다르네?”

충전기와 한참동안 씨름을 벌이던 동행이 예기치 못한 말을 꺼냈다. 당초 렌트카 하우스에서 받은 충전 카드가 제주도에서 설치한 충전소 전반을 이용할 수 있는 카드였다면, 해당 대형 마트에 설치된 충전기는 포스코ICT에서 운영하는 시설이라 별도의 멤버십 카드가 필요했던 것이다. 대형마트 안내데스크에도 전기차 충전에 대해 아는 직원들이 전혀 없어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남은 배터리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60㎞. 다음날 오전, 하루 늦게 합류하기로 된 동행을 제주 공항에서 픽업해야 했던 터라 당혹감은 컸다. 인근의 또 다른 급속 충전소로 이동했지만 그곳 역시 어댑터가 고장나 충전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기자와 동행들은 다음날 아침 일찍 제주 항공으로 출발, 가는 길에 충전소에 들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어댑터가 차량의 충전구와 제대로 접촉이 되질 않았다. 남은 잔량이 12㎞였기에 인근 충전소로 이동하기도 무리였다. 전기차 특성상 내연기관차처럼 기름을 공수해 넣는 게 가능한 것도 아니라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렉카를 불러야 했다. 기자와 동행들이 충전소 앞에서 망연자실해 있는 것을 본 한 제주도민은 “제주도민들도 불편해서 집에 충전시설이 없는 사람들은 잘 타지 않는 게 전기차”라며 “가스차나 경유차도 있는데 왜 하필 렌터카로 전기차를 빌렸느냐”며 혀를 찼다.

천운인지 가까스로 충전이 되기 시작해 무사히 동행을 픽업했지만, 남은 여행 역시 전기차 충전소를 찾아 헤매는 데 대부분을 할애해야 했다. 자연스레 여행의 모든 동선이 전기차 충전소를 따라 구성됐다. 뿐만 아니라 기껏 찾은 전기차 충전소 앞에 비 전기차나 충전이 완료된 뒤 방치된 차들이 있어 허탕을 치는 경우도 몇 차례나 겪었다.

제주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제주도 전역에서 운행 중인 전기차 대수만 총 9167대, 충전소는 총 2470 곳이 설치돼 있다. 올해에는 전기차 1만5000대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되며 충전소도 2430 곳 가량 추가로 설치될 예정이다. 하지만 2박3일간 겪은 제주도 전기차 여행은 신규 충전소 설치 만큼이나 기존 충전소에 대한 관리가 시급하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었다.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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