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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반복되는 지연 공시 논란
뉴스종합| 2018-02-21 11:45
한미약품은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 릴리에 기술수출한 면역질환 치료제 ‘HM71224’의 임상 2상 시험이 중단됐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이는 릴리가 임상 2상 중간분석 결과, 목표하는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져 임상을 중단하겠다고 한미약품에 통보한 데 따른 것이다.

한미약품은 이번 임상중단에 대해 “면역질환의 한 종류인 류머티즘 관절염에 대한 것이고, HM71224를 다른 면역질환 치료제로 개발하는 방안을 양사가 다시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HM71224는 한미약품이 2015년 릴리에 계약금 5000만달러,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 6억4000만달러에 기술수출한 신약후보물질이다. 임상중단으로 인해 한미약품의 계약금 반환의무는 없으나, 향후 마일스톤 수취에 차질은 불가피해 보인다.

사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 제약사의 임상중단은 연구과정에서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고 한미약품의 다른 파이프라인(개발중인 신약 후보물질)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시시점이 설 연휴 전날, 그것도 장 마감 후 였다는 점에서 왜 하필 그 시간이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중요한 투자 정보에 대한 공시시점을 회사 측이 임의로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한미약품에 따르면 회사가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 위치한 릴리 본사로부터 임상중단을 통보받은 시점은 14일 정오께(현지시간 밤 10시)였다. 이후 약 세 시간여의 내부검토를 거쳐 지체없이 공시했다는 게 한미약품 측 입장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상장회사가 보고한 공시를 거래소에서 검토하는 데에는 최대 20분이 걸린다고 한다. 투자자들이 볼 수 있는 최종공시가 오후 3시51분 등록됐기 때문에, 이를 역산하면 한미약품이 공시를 등록한 시점은 14일 오후 3시31분에서 3시40분 사이로 추정된다.

거래소가 지체없이 공시검토 후 이를 등록했다면 결국 한미약품은 1~10여분 차이로 ‘올빼미 공시’를 택한 셈이다.

올빼미 공시란 주가 하락 요인이 되는 악재성 내용을 장이 마감한 뒤 공시하는 것으로, 내부정보 사전유출에 의한 불공정거래 발생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

물론 회사 측 주장대로라면, 이번 장 마감후 공시는 릴리로부터 임상중단을 통보받은 이후 지체없이 처리한 결과이고, 그게 하필이면 장 마감을 살짝 넘어갔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날 어쩐 일인지 외국인과 기관은 한미약품을 일제히 순매도했다. 공시 정보가 등록되기 전 외부로 흘러나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미약품은 지난 2016년에도 베링거인겔하임, 사노피 등과 맺은 굵직한 계약건의 차질을 연휴 전날 공시해 ‘지연 공시’ 논란을 자초한 바 있다.

이번에 올빼미 공시 논란을 또 한번 부른 게 아쉬운 이유다. 더욱이 한미약품은 투자자들에게 서둘러 정보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면서도, 그 흔한 보도자료조차 기자들에게 배포하지 않았다. 다음날 다른 호재자료는 ‘지체없이’ 배포했다.

거래소는 이번 한미약품 공시의 적정성에 대해 의견을 묻자, “공시에 해당하는 중요 정보사항을 검토하는데 세 시간 정도를 할애했다면 적정한 것 같다. 공시규정을 포괄주의로 전환하면서 공시시점에 대한 판단은 회사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며 문제 삼을 일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회사의 자의적인 판단을 제재할 방법이 없다. 주식거래 시간이 하루 여섯시간 반 정도다. 중요 공시정보를 검토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적절한지 회사규모별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세 시간 정도는 괜찮고, 너댓시간 걸리면 잘못된 것이라고 주먹구구식으로 해석할 순 없다.

설 연휴 전날 마감 후에는 한미약품외에도, 코스닥 상장사인 케이에스피와 에스마크, 이디 등 세 곳이 실적 부진으로 상장폐지 직전 단계인 관리종목에 지정될 수 있다는 공시를 올렸다. 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 시장에서 거래 중인 종목이 관리종목에 지정될 수 있는 사유가 발생할 경우에는 공시시점부터 30분간 매매거래가 정지되지만, 이들 3사는 해당 내용을 장 마감 후 밝혀 거래가 정지되는 것을 회피했다. 거래소는 2016년 한미약품-베링거인겔하임 임상중단 시에도 계약해지를 다음날까지 공시할 수 있게 한 당시 규정 때문에 늑장공시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가치있는 정보를 적시에 알 권리는 기관, 외국인, 개인 모두에게 보장돼야 한다. 올빼미 공시ㆍ늑장공시 논란을 막기 위해서는 상장회사의 도덕성과 거래소의 책임의식을 모두 다잡아야 한다.

youkno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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