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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오세정 바른미래당 의원]4차 산업혁명시대의 규제
뉴스종합| 2018-02-28 11:18
규제개혁은 우리나라의 해묵은 과제이다. 정부는 이미 20년 전인 1998년에 국무총리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규제개혁위원회를 설립하여, 기존 규제는 재검토하고 신설 규제는 사전심사를 의무화하는 등 규제 간소화 노력을 해온바 있다.

그러나 그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역대 대통령마다 좀 더 강력한 규제개혁을 외쳐왔고,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규제 전봇대를 뽑는다” “손톱 밑 가시를 뽑는다” “규제 암덩어리” 등의 표현을 써가며 공무원들을 독려하였으나 그 성과는 미미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최근 우리나라 규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글로벌 100대 혁신기업 (신생벤쳐) 중 70%는 규제 때문에 한국에서 사업이 어렵다는 분석이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서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월 22일 열린 ‘규제개혁 토론회’에서 “혁신 성장을 위해서는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융합기술과 신산업의 발전을 위해 과감한 규제 개혁 정책을 펴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현장에서는 “과연 이번에는 믿을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과거의 규제개혁 시도들도 대통령의 의지는 강력한 듯이 보였지만 결국은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규제개혁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이익집단의 반발, 사회적ㆍ이념적 갈등, 공무원들의 행정편의주의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차량공유업체인 우버는 기존 택시업자들의 반발로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원격의료업체인 위닥터, 숙박공유업체인 에어비앤비, 드론 택배사업, 스마트 홈 서비스 등도 사업의 일부 혹은 전부가 각각 한국의 의료법, 공중위생관리법, 항공안전법,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된다. 이렇게 규제는 실타래처럼 엉켜있기 때문에 단숨에 처리하기 어렵다. 게다가 규제와 공무원의 권한은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서 공무원들은 본능적으로 규제 철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규제는 하나씩 풀어가기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아 그동안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지지부진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제 의미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마침 4차 산업혁명시대의 도래는 그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인공지능, 빅 데이터, 클라우드 기술들이 우리 생활을 얼마나 급속히 변화시키는지를 보아왔다. 이들 변화의 공통점은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과거의 기술 발전은 인간의 근육(힘)을 보강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 시대의 기술, 특히 인공지능은 인간의 뇌(지적 능력)를 대치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지금 어느 전문가도 인공지능이 세상을 궁극적으로 어떻게 바꿀지 잘 모른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우면 당연히 규제하기도 어렵다.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도, 어떤 부작용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정교하게 대응 규제를 마련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경우 최선의 방책은 확실히 문제가 되는 것은 규제하지만 나머지는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 후 상황을 살펴보면서 부작용이 나타나면 그 때 시의적절하게 규제하면 된다.

이렇게 하려면 허용되는 것을 열거하는 포지티브(positive) 규제 시스템을 포기하고, 하면 안되는 것만 규정하고 그 외는 풀어주는 네가티브(negative) 규제 시스템으로 과감히 바꾸어야 한다. 물론 이런 경우 우리나라의 법체계와 상충되는 면이 있을지도 모르고 과거의 포지티브 규제시스템에 익숙한 공무원들은 불안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가고 있는데 잘 모르면서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겠다는 발상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지난 1월 말의 대통령주재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신산업ㆍ신기술 분야에서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전환하고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이번에도 과거처럼 용두사미가 되지 않으려면 그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공무원, 그리고 정치인들의 확실한 의지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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