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가장 아름다운 땅, 가장 아픈역사 재조명
라이프| 2018-04-04 11:37
제주 4·3 ‘그 날’ 증언 시집·그림책 출간
토속 방언·섬사람 구술 詩에 담겨 생생


제주 4.3은 ‘가장 아름다운 땅에서 일어난 가장 비극적인 일’로 불린다.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제주4.3은 여전히 떠돌이다. 진상 규명에도 역사에서 제 자리를 못찾고 있다. 올해 70주년을 맞아 ‘그 날’을 증언하는 시집이 다수 출간됐다.

“이 시집이 그저 아름답고 청정하다는 내가 사는 섬, 그 그늘엔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피와 눈물이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주 토박이 김수열 시인(59)은 시선집 ‘꽃진 자리’(걷는사람)를 내면서 후기에 이렇게 썼다. 1982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등단한 이래 36년 동안 끊임없이 제주 4.3을 시로 얘기해온 그는 이번에 이들을 한 데 모아 시선집을 냈다.

시인은 이 시선집에서 ‘모두 죽고, 모두 불타고, 모두 빼앗겼던 4·3의 폐허’를 가로지르며 ‘그 날’의 현장과 아픔의 자리를 보여준다. ‘4.3시절에 집 나간/ 연락 끊긴 사름네 처가속덜/ 다시 싸그리 잡아들연/ 그때 고구마 창고에 가두어놨단/ 첨, 그날은 잊어불 수가 없주’( ‘백조일손’)고 서늘한 기억을 되짚는가 하면, ‘그러나 아들아/ 나보다 훨씬 굽어버린 네 아들아/ 젊은 아비 그리는 눈물일랑 그만 접어라/ 네 가슴 억누르는 천만근 돌덩이/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물에서 온 편지’)라며 오랜 상처를 위무하기도 한다.

토속 제주 방언과 섬사람들의 구술이 시에 그대로 담겨 더욱 생생하다.

‘제주 4·3 70주년 기념 시 모음집’이라는 부제를 단 ‘검은 돌 숨비소리’(걷는사람)도 함께 나왔다. 한국작가회의 소속 91명 시인의 시를 모았다. 이종형, 홍경희 등 제주 지역 시인들과 신경림,정희성, 이시영, 안현미, 장이지, 김성규 등 원로 시인까지 두루 참여했다.

‘흙은 살이요 바위는 뼈로다/두 살배기 어린 생명도 죽였구나/신발도 벗어놓고 울며 갔구나/모진 바람에 순이 삼촌도/억장이 무너져 뼈만 널부러져 있네’(정희성 ‘너븐숭이’ 전문)

‘제주 4.3’을 처음 알린 이산하 시인의 장시 ‘한라산’(노마드북스)도 제주4·3 70주년을 맞아 시집으로 복간됐다. 이 시는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인 1987년 무크지 ‘녹두서평’ 3월호에 처음 실렸다. 이 일로 시인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지만 이 시는 필사형태로 많은 이들에게 읽혔다. 2003년 시학사에서 시집으로 출판, 절판됐다가 이번에 시인학교의 제자들이 비용을 마련, 시집을 복간했다.

‘미군과 피도 눈물도 없는 하우스만 고문의 지휘 아래/이승만 군경의 가공할 ‘빨치산 토벌작전’은/우리 현대사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비극과 오욕이었다./(중략)/90%의 마을이 불타고 사상자 75%가 15살 이하의 어린이에서 보듯/당시 전체 도민 28만 중에서 약 5만여 명이 학살된/이 가스실 없는 ‘한국판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는/미군정에서 기자들과 외부특파원의 접근을 금지시키며/1급비밀로 분류해 세상에 전혀 공개되지 않은 채/무려 40년이나 그 진실이 은폐되어 왔다.’ (33∼35쪽)

어린이들과 함께 보면 좋을 제주 4.3의 이야기 그림책도 나왔다. ‘나무 도장’(평화를품은책)은 권윤덕 작가의 신작 그림책이다.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현장 답사와 인터뷰, 고증을 통해 4·3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정확히 재현하려 애썼다고 작가는 밝혔다. 그림책 ‘무명천 할머니’(스콜라)는 4·3 당시 마을에 들이닥친 토벌대의 무차별 총격에 턱을 맞은 진아영 할머니의 실제 이야기를 그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