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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100일③] 미투했다가 “꽃뱀” 조롱ㆍ악플…피해자들 우울증 시달리기도
뉴스종합| 2018-05-09 10:01
-미투 운동 손가락질ㆍ피해자 조롱 악플에 상처
-왕따 당하고 퇴사까지…타인 아픔 외면하는 사회
-펜스룰 등 남녀 갈등으로 치달을 때 가장 마음 아파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가해자만큼 무서워요.”

미투 피해자 A 씨는 미투 관련 인터넷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볼 때마다 고통스러워 숨을 쉴 수가 없다. ‘무고죄를 강화해야 한다’, ‘꽃뱀 조심해야 한다’는 식의 댓글을 보면 미투 운동에 동참한 게 회의감마저 든다.

미투 운동 이후 10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피해자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에 피해자를 대놓고 조롱하는 글들, 미투가 지겹다는 댓글들에 계속 상처를 받는다고 했다. 상처를 끄집어내 사회에 알린 것은 더 이상 비슷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는 바람이었지만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좌절감을 느낀다. 

3ㆍ8 여성의날 110주년인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열린 ‘제1회 페미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미투(METOO)&위드유(WITHYOU)’운동을 지지하는 흰색 장미를 들고서 참가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두 달 전 미투 운동에 동참했던 피해자 B 씨는 현재 불면증과 우울증에 약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상태다. 가장 그를 괴롭히는 것은 미투 피해자들을 향한 손가락질이다. 미투 폭로가 이어질 때마다 잇따르는 ‘무고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그는 혹시 자신도 무고죄 가해자가 되는 것인지 위축되고, 고통스러웠던 그 날을 계속 떠올리게 된다. B 씨는 “악몽 같은 날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리플레이를 하면서 내가 빠져나갈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인가 생각한다”며 “내가 그날 외출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 사람의 연락을 아예 받지 않았다면 그게 정답이었을까 싶은 마음에 너무 괴롭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피해자는 그저 사과받고 싶은 마음에, 더 이상의 피해가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미투를 했던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직장내 성폭행을 고발한 이후 직장을 잃고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도 있다.

미투 피해자 박모(28ㆍ여) 씨는 직장 상사로부터 술자리에서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해 회사에 알린 이후 오히려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회사 사람들은 앞에선 박 씨가 용기있다고 응원하면서도 뒤에서는 가해자를 걱정했다. 박 씨는 결국 사표를 냈다. 그는 “그들도 회사 생활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겠지만 모두 피해자를 외면한다면 정작 자신이 피해를 입었을 때 똑같이 상처받을 것”이라며 “피해자가 오히려 회사를 그만둬야 하면 가해자가 반성을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박 씨처럼 직장 내 성폭력을 당한 이후 2차 피해를 받는 여성은 상당히 많다. 서울여성노동자회가 2014~2016년 상담한 성희롱 피해자 2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전체의 57%가 성희롱 문제 제기로 2차 피해를 겪었는데, 파면, 해임, 해고, 그 밖의 신분상실에 해당하는 ‘신분상의 불이익’과 ‘집단 따돌림과 폭행 및 폭언, 그 밖의 정신적ㆍ신체적 손상’이 가장 많았다. 성희롱 피해자 중 조사 당시 해당 직장에 재직 중인 여성노동자는 28%에 불과했고 72%가 퇴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투 운동이 펜스룰을 몰고 왔다는 생각에 자책하는 피해자도 있었다. 미투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모(32ㆍ여) 씨는 “미투 운동에 관한 논의가 남녀갈등으로 치달을 때 가장 속상했다”며 “여성을 배제한다거나 남성을 혐오한다거나 모두 잘못됐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폭력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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