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라이프 칼럼-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판사는 외롭다
뉴스종합| 2018-05-15 11:23
“형, 죄송합니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연락이 안됩니다”.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고등학교 후배인 판사로부터 온 문자이다. 평소 살갑게 따르던 절친한 후배이다. 특별히 봐달라는 것도 아닌데 이런 문자를 보내다니 섭섭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 후배를 진정한 판사로 인정하게 되었다. 판사는 이처럼 때론 절친한 인간관계마저 차단해야 하는 외로운 직업이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장을 파면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가 이를 접수하고 답변한 사실을 대법원에 전달하였는데, 이로 인해 ‘사법부 독립 침해’ 논란이 뜨겁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사법권 침해 우려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법원 내부에서도 강한 문제제기가 있다고 한다.

청와대가 전달했다는 내용 자체가 법관인사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를 두고 사법권 침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전화를 하였다는 자체가 압박일 수 있다. 삼권분립이란 얇은 유리판 같은 것이다. 눈에 보인다고 섣불리 접근하면 깨지기 쉽다.

사법부는 입법의 원칙인 다수결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국가기관이다.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그래서 법관의 독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상대방이 간섭이라고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착각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판단하여야 한다. 법관이 압박을 받았다고 느끼거나 느낄 여지가 있어서는 안된다.

사건에 대하여 가장 많이 고민하는 사람은 당사자와 변호사이다. 그에 버금가는 고민을 하는 제3자는 판사이다. 사법적 정의를 언급하지 않아도 자신의 판결이 상급심에서 파기되는 것은 인간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사만큼 해당 사건에 대하여 고민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판결을 법리나 논리가 아니라 판사 개인에 대한 비난에 집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법부의 독립은 다른 국가권력이 아닌 여론에 의해서도 침해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뉴욕주 변호사협회와 업무협약(MOU)를 체결하고 심포지엄을 공동으로 개최하였다. 변호사 이외에 미국 법관의 최고 영예라는 연방판사들도 함께 참석하였다. 심포지엄의 내용뿐만 아니라 법관에 대한 존경이라는 측면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은 늘 판사 이름 앞에 ‘Honor’라는 단어를 붙여 존경심을 표시한다.

아쉽게도 지금까지 우리 법원은 그다지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했다. 사실관계가 거의 동일함에도 대법원까지 거친 확정판결이 재심에 의하여 뒤집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법원 스스로 눈치보기 판결을 한 적이 없는지 반성할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반성과 개혁의 실천은 1차적으로 사법부에 맡겨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개혁이 화두인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판사는 판결로 말해야한다. 국민들도 판사가 여론이 아닌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판결로 말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판사는 공정을 담보하기 위하여 외로울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그러나 그 외로움을 국민의 존경으로 충분히 채울 수 있는 매우 명예로운 직업이다. 판사에게 ‘존경하는’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법정에서 재판받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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