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시민단체 “27일 직접 철거할 것”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나라 지킨 사람은 유관순, 이순신 같은 위인 아닌가요? 호국로에 왜 전두환 공덕비가 있어야 하나요.”
경기도 포천 호국로 인근 국도변에 세워진 무려 5m 높이의 전두환 공덕비가 인근 시민들의 눈살을 받고 있다. 시민단체가 해당 표지석 철거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시는 민원처리에 시간이 걸린다는 입장이다. 한 시민단체는 포천시가 민원처리에 미온적이라며 오는 27일 표지석 강제철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전두환 공덕비’는 지난 1987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43번 국도를 확장포장한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공적을 치장하는 문구가 표지석 앞뒤로 설치한 받침돌에 자세하게 적혀있고. 전 전 대통령의 친필로 쓴 호국로(護國路)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호국로란 길 이름도 전 전 대통령이 명명한 것이란 설명도 함께다.
[‘전두환 공덕비’ 받침돌에 적힌 문구. 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
공덕비는 30년이 지난 최근에야 논란이 불거졌다.
포천진보시민네트워크는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지난 17일 축석고개 입구에서 기념비 철거 기자회견과 하얀 천으로 기념비를 가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기념비를 ‘학살자 전두환 죄악 증거비’라고 명명하고 당장 철거해야 한다며 주장했다. 다음날인 18일에는 인근에 사는 60대 남성은 전 전대통령을 비난하며 기념비를 덮고 있던 천에 기름을 뿌린 뒤 불을 붙여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5ㆍ18 하루 전날 흰 천으로 덮어 가려놓은 전두환 공덕비. 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
시민들은 무심코 지나쳤던 공덕비가 전 전 대통령과 관려있다는 사실에 즉각 불쾌감을 표했다.
포천에서 일하는 직장인 오아름(25) 씨는 “시민이 나서기 전에 국가에서 철거해야 하는 것 아니냐. 조용히 철거만 하고 끝낼 일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이런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왜 철거하는지까지도 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적인 중장년층 사이에서도 긍정적 반응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신범수(65) 씨는 “철거할 때 철거하더라도 여론 수렴은 해봐야 한다. 진보 시민단체의 이름으로 철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보수층이나 중도층도 철거 여론이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포천에서 10년째 거주하고 있는 김양순(70ㆍ가명) 씨는 “국민의 생각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나. 호국로라는 길 이름을 전 전대통령 때 지었다해도 그 길에 그 사람 공덕비가 말이 되냐”며 “시대가 바뀐만큼 이젠 해결해야한다. 전 전 대통령은 시대가 바뀌어도 좋은 평가를 받는 일은 없을 사람 아니냐”고 말했다.
[‘전두환 공덕비’ 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현수막이 걸려있는 모습. 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
시민들도 꺼리는 공덕비지만 포천시는 당장 철거 예정이 없는 상태다.
21일 포천시에 따르면 해당 표지석은 소유자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철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해당 표지석은 지난 2016년에 포천에서 내리 6선한 이한동(83) 전 국회의원(현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이 주도해 해당 표지석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포천 진보시민네트워크는 “포천시와 국토교통부, 국방부에 문의를 거듭한 결과 관리주체는 포천시인 것으로 결론났는데도, 시에서는 표지석 소유주가 모호하다며 미온적”이라며 “시에서 조속한 처리를 약속하지 않는만큼 직접 행동에 나서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광주 시민군이 시청에 진입한 날짜인 5월 27일을 기념해 해당일에 표지석 강제 철거에 돌입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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