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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화되는 ‘性戰’-上. 불붙은 갈등①] “일상적 공포, 살기 위해 거리로”…여성들은 왜 분노하나
뉴스종합| 2018-05-28 10:01
-화장실 가는 것도 조심해야 하는 사회 달라져야
-“여성 자유의 문제인데 성대결 몰아가 안타까워”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동일범죄 동일하게 처벌하라. 검경들은 차별 철회하고 평등수사 평등보호 보장하라! 언론들은 꽃뱀 타령. 남자들은 무고타령, 이제 정말 화가 난다.”

불법촬영 성차별 수사를 규탄하는 여성들의 시위가 26일 오후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열렸다. 지난 19일에 이은 두 번째 주말 도심 시위다. 이날 참여한 800여명의 여성들은 그동안 여성들이 겪은 수많은 몰카 피해를 지적하며 경찰과 검찰의 남녀 차별적 수사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검은 옷과 ‘또 찍어?’라고 적은 종이를 든 참가자들은 “가해자가 남성이면 미래 봐서 감형하고, 가해자가 여성이면 천하제일 악질인가”, “남성 중심 차별수사 각성하고 규탄하라”, “남의 불행 즐겨놓고 아닌 척 마 남자들아. 너희가 가해자다”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이들이 거리로 나온 일차적인 이유는 여성들이 겪는 일상적인 몰카 피해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이날 시위를 준비하는 안내소에는 ‘화장실에서 몰카를 목격한 적 있나요?’라는 스티커 설문에 90%가 넘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답했다. 시위에 참여한 대부분의 여성이 몰카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만약 내가 성별이 남성이었다면 몰카 걱정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분노했다. 실제 몰카 사건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7년간(2012~2018년 5월) 몰카 범죄 피해자 총 3만4416명 중 여성 피해자는 2만9194명(84.8%)이다. 몰카 범죄자(2만1447명) 가운데 남성 비율은 97.5%(2만924명)에 달한다. 여성 비율은 2.4%(523명)에 불과하다.

지난 26일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열린 ‘성별에 따른 차별수사 규탄집회’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건…‘조심 또 조심?’=몰카 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게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서 분노했다. 이러한 불만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먼저 분출된 바 있다. 2016년 5월 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상가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모르는 남자에게 살해당한 것을 두고 여성들은 “남일 같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두고 많은 여성들은 한국사회의 여성이라면 여성을 대상 성범죄에 대한 일상적인 공포심을 갖고 살아간다고 함께 슬퍼했다.

최근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으로 촉발된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들은 몰카 사건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고 있는 수많은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있었다.

이번 시위 운영진 측은 몰카 사건을 비롯한 한국 여성들이 겪는 안전문제를 ‘자유’의 문제라고 했다. 운영진은 “여자는 성추행이나 강간 위험을 걱정해 혼자서 여행가기도 힘들고 밤에 홀로 산책 가는 것도 무서움을 감수하고 가야 한다. 남자는 1층 자취방도 마음대로 사는데 여자가 집 매물을 구할 땐 반드시 2층이상에 살라는 조언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제 몰카 때문에 공공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가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여성들의 시위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김성인(52) 씨는 “딸 가진 아버지로서 딸에게 맨날 조심하고 다니라고 잔소리했는데 사회가 여성들도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보호망을 강화하는 게 먼저였다”며 “똑 부러지게 나와서 할 말하는 젊은 친구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직장인 윤소린(32) 씨는 “지금 인터넷에 화장실 몰카라고 쳐도 수많은 사진이 뜬다. 불법 음란사이트에 지금도 일반인 몰카가 올라오고 있을 것”이라며 “너무나도 만연한 문제이라 잡기 어렵다고 해서 손 놓고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지난 26일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열린 ‘성별에 따른 차별수사 규탄집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화장실에서 몰카 구멍을 본 적 있느냐는질문에 대부분의 여성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함께 잘사는 일인데…단순 성대결로 몰아가는 일부 세력들=여성들은 시위의 성격을 남녀의 성대결로 몰아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을 예로 들었던 이유는 여성 몰카 사건도 이처럼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수사하라고 목소리 냈던 것이지, 홍대 사건의 피의자를 감싸거나 옹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성별에 따른 차별수사 규탄집회 운영자는 “본 시위를 포함한 ‘여성인권 신장’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시위들은 단순 성대결을 위한 집회가 아니다”라며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연봉, 가사 노동차이 등 수많은 곳에서 억압, 차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번 편파 수사도 여성차별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인근 거리에서 만난 대학생 유모(24ㆍ여) 씨는 “얼마 전 화장실에서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는 것은 보고 너무 무서웠다”며 “입장 바꿔서 남성들이 화장실 갈 때마다 이런 일을 당한다고 생각해 보라.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누나가, 여동생이 이런 두려움을 갖고 매일 산다고 생각해보라. 이는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다. 함께 사는 일에 응원을 못해줘야지, 남녀전쟁으로 깎아 내리는 세력이 있어 답답하다”고 지적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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