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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이사람] 김병주 변호사, “100세 시대, 성년후견은 필수죠”
뉴스종합| 2018-05-30 09:01
- ‘신격호 후견’ (사) 선ㆍ법무법인 원, ‘가족법 센터’ 개설
- “누구나 늙고 병들어…후견제도는 꼭 필요한 사회안전망”
- 성년후견 지난해 1690건…“나도 후견인 지정해둘 것”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질병, 노령 등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하다. 자녀들 사이에 경영권을 둘러싼 극심한 갈등이 계속되고 있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전문가를 선임했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절정에 이르렀던 2016년 8월,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불가능했던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에 대한 법원의 ‘한정후견’ 결정이 내려졌다. 2013년 ‘성년후견제’가 도입돼 미성년자가 아닌 96세의 고령인 신 명예회장에게도 법원이 후견인을 지정할 수 있었다.

신 명예회장의 후견인으로 지정된 사단법인 ‘선’ 소속 구성원들은 지난달 가족법센터를 새롭게 열었다. 그간 쌓은 노하우를 활용해 성년후견 제도의 저변을 넓히는 데 집중하기 위해서다. 센터를 이끌게 된 김병주(52ㆍ사법연수원 22기) 변호사를 지난 28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달 출범한 가족법센터를 이끌게 된 법무법인 원의 김병주 변호사. 그는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선에서 이사도 맡고 있다.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재벌이나 유명인을 통해 이 제도를 접한 사람들은 ‘자산가의 전유물’로 인식하겠지만, 사실 내 이웃 또는 나에게 꼭 필요한 복지입니다. 후견제도의 두 축은 신상보호와 재산관리입니다. 재산이 적더라도 아파트 관리비 납부, 병원 방문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신상보호는 필요하죠. 저 역시도 언젠가 겪을 수 있는 장애에 대비해 후견인을 지정해둘 계획입니다.”

김 변호사는 원래 대기업 금융 분야 자문을 주력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점차 나이가 들어가고, 의뢰인 중에는 본인이 재산관리를 할 수 없는데 자식 사이에 분쟁이 생기는 사례도 여럿 목격했다. 잘나가던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고객이 갑자기 치매를 겪은 사례도 목격했다.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견약정만 해놨으면 막을 수 있었던 문제들도 있었어요. 앞으로 정부 주도 아래 후견 전문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고, 그만큼 변호사 업무도 늘어날 겁니다.”

기존 민법에도 ‘금치산ㆍ한정치산’ 제도가 있었지만, 성년후견은 후견인 역할이 재산관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2013년 민법 개정으로 금치산ㆍ한정치산 제도는 사라지고, 성년후견 제도가 시행됐다. 의료행위나 우편물 관리, 거주지의 결정 등 신상보호 관련 지원이 가능해졌고, 가족이 아닌 제3자도 후견인을 맡을 수 있게 바뀌었다. 김 변호사는 “과거 제도는 피후견인을 소외시켰고, 신상보호에 대한 수요는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반면 성년후견 제도는 본인의 의사와 능력을 존중해 후견 범위를 정할 수 있도록 했고, 법원이 궁극적인 후견감독인 역할을 맡아 인간다운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게 됐습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성년후견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갑작스레 치매를 앓게 된 A씨의 배우자는 외국인이었어요. 둘 사이 자녀가 없다보니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가족도 없었죠. 한국 사회에 익숙하지 않은 배우자를 대신해 통원 치료와 은행, 동사무소 업무를 도와줄 후견인이 필요했어요.”

그는 후견과 관련해 로펌이 집중적으로 맡아야 할 분야는 ‘임의후견’이라고 지적했다. 임의후견은 추후 자신이 치매에 걸릴 경우 자신의 신상보호 및 재산관리를 맡아줄 사람을 미리 지정, 계약하는 제도다. 법원이 임의로 지정하는 법정후견인과 달리 임의후견인은 당사자가 원하는 인물로 정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 정서상 자신이 치매에 걸릴 것에 대비하기는 쉽지는 않죠. 하지만 100세 시대인 지금, 선택이 아니라 필수 아닐까요. 비용도 걱정없습니다. 일종의 보험을 가입해둔다고 생각하고 미리 후견계약을 해두는 겁니다. 노년에 치매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후견인에 보수를 지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는 성년후견을 보편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가정법원에 접수된 후견개시 사건은 2014년 768건에서 지난해 1690건으로 3년 새 2배 이상 증가했다. “당장 후견제도가 보험과 같이 일반화될 거라고 보진 않습니다. 하지만 누구든 나이가 들어갑니다. 노령 치매는 의학 발달에 따라 시기를 늦출 수 있을 뿐이지 언젠가 마주해야 할 질병입니다. 가족관계에 대한 인식 변화, 정책 개선 등에 따라 자연스레 후견에 대한 요구가 늘 수밖에 없겠죠. 이때 본인이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와 미리 후견계약을 해두는 임의후견의 장점이 크게 발휘될 겁니다.”

kwater@heraldcorp.com

▶김병주 변호사는 △1965년 경남 함양 △부산 해운대고ㆍ서울대 법대 △사법연수원 22기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변호인단 간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 위원장 △대한변호사협회 국제인권 특별위원회 위원장ㆍ인권위원회 위원 △법무법인 원 변호사(현) △사단법인 선 이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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