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동작구의 영도시장이 텅 비어있다. 어두침침한 모습으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까지 새어나오는 모습이다. [사진=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
-서울 전통시장 매출 2001년 40조→2015년 21조
-영도ㆍ길음시장 몰락…지원보다 상인 먼저 변해야
서울 전통시장이 침체의 늪에 빠져있다. 정부와 서울시, 구청이 그간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지만 나아진 것은 없다. 되레 매출 감소에 공실률만 느는 실정이다. 누군가가 돈을 투자해주는 일만으로는 ‘잘 사는’ 전통시장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한 셈이다. 전통시장 스스로의 각성이 필요할 때다. 위기감을 갖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전통시장의 현재를 보고 바람직한 미래를 통찰하기 위해 현장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현금 없어요?”
지난 9일 오후 6시 직장인 강승호(30) 씨가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후암시장 내 한 점포에서 값을 치르고자 카드지갑을 꺼내자 상인이 한 말이다. 현금이 없다고 하니 주변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카드결제는 안 되느냐고 묻자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결국 장바구니에 담은 모든 물건들을 제자리에 내려놓고 자리를 떠야했다. 강 씨는 “아직도 카드결제를 안 받는 곳이 있는지 몰랐다”며 “이젠 아무리 급해도 전통시장은 가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서울 전통시장이 끝없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중앙정부와 서울시, 각 구청이 매년 회생대책을 쏟아내지만 큰 성과는 없다. 되레 상당수 전통시장은 ‘산소 호흡기’를 단 신세로 전락중이다.
10일 중소기업벤처부 등에 따르면, 전국 1500여곳의 전통시장 매출은 2016년 기준 21조8000억원이다. 2001년(40조1000억원)보다 45.6% 떨어진 값이다. 정부가 전통시장을 살리고자 3조원 이상을 쏟아 붓고, 서울시 등 지자체도 이를 거들고자 대형마트 의무휴업 등을 밀어부쳤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몰락은 시장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때부터 예고된 일이었다는 지적이다. 카드결제 등 신기술 거부, 신규고객을 찾기 위한 노력 부족 등 경직된 환경에서 지원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는 이야기다.
지난 6일 서울 동작구의 영도시장이 텅 비어있다. 어두침침한 모습으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까지 새어나오는 모습이다. [사진=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
대표적인 예가 동작구의 영도시장, 성북구의 길음시장이다.
동작구에 따르면, 1968년부터 운영된 영도시장은 구의 16곳(상점가 포함) 전통시장 중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한다. 1980년대에는 점포수가 200곳을 넘었지만, 상인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규모도 줄어든 채 지금은 점포 60곳만이 자리를 지킬 뿐이다. 현재 공실률은 40%에 달한다. 이는 오랜 전통, 인근 지하철역 등 좋은 입지만 믿고 안주한 결과라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6일 오전 11시 영도시장을 찾아보니 아직도 카드결제를 하지 않으려는 점포가 존재했다. 점포 대부분은 어디서도 볼 수 있는 물건들을 매대 위에 올려둘 뿐이었다. 텅빈 상가 사이 ‘흡연금지’, ‘노상방뇨금지’ 등 표지판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연숙(55ㆍ여) 씨는 “몇몇 점포는 장사를 하는지 안하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라며 “도보 5분 거리인 아파트에 살지만 정말 급할 때가 아니면 안 찾는다”고 했다.
성북구의 길음시장도 4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나, 길음뉴타운 곳곳에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방문객이 점차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몇몇 상인들은 “청년 등 새로운 고객층이 있어야 시장도 사는데, 모두가 당장의 단골 손님만 쳐다본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 상인은 “상인 상당수가 변화를 싫어한다”며 “젊은 층은 시끄러워서 싫다는 등 그저 오늘 내 장사만 잘 되면 된다는 마인드”라고 했다.
길음시장은 내부에 청년상인을 들여 젊은 층을 이끌려는 시도도 사실상 무산됐다. 기존 상인, 청년 상인이 운영방식을 두고 번번히 충돌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5명이던 청년상인 중 2명은 일을 그만 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중기부와 서울시 등은 최근 전통시장 특성화 사업을 전면 개편했다고 밝혔다.
시장을 기존처럼 골목형ㆍ관광형 등 4개 유형으로 분류하지 않고, 각자의 특징을 살려 ‘맞춤형’ 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시장이 변하지 않으면 ‘공염불’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유통학회 관계자는 “관 주도의 지원책은 말 그대로 지원일 뿐”이라며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결국 시장도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체질 개선에 실패하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yul@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