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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수립 100년 잊혀진 사람들① - 나중화 광복회 부회장 인터뷰] “부친 독립운동으로 집안 휘청…광복후에도 가혹한 시련”
뉴스종합| 2018-07-10 11:22

선친 3·1운동 참가후 독립운동
철혈단 조직 항일 나창헌 선생

집안보다 중요한게 나라…
선조에 대한 자부심 안고 살아


기쁨이라는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당시를 떠올려주는 기억이란게 남기 마련이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 1945년 당시 조선인들이 마주했을 광복의 기쁨도 7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지고 있는 듯 하다. 광복을 위해 싸웠던 독립유공자들의 희생과 업적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그들의 노고를 다시금 되새기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올해 8월 15일은 73주년 광복절이다. 또 내년이면 임시정부 수립과 3ㆍ1운동 100주년을 맞는다. 이에 헤럴드경제는 독립운동가와 그 유족들의 삶을 다시금 기억하는 특집기사를 준비했다. [편집자주]

나중화(87) 광복회 부회장에게 독립유공자인 부친 나창헌 선생은 ‘자부심’이다.

평안북도에서 출생한 나창헌 선생은 경성의학전문학교(당시 의대)에 2학년생으로 재학중이던 1919년 3ㆍ1운동에 참가하면서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을 조직해 삼일운동의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리려 힘썼고, 무장투쟁단체인 철혈단을 조직해 일제에 맞섰다. 병인의용대를 조직해 친일파들의 숙청 작업을 벌였고, 임시정부의 일원으로서도 활약했다.

우리에게는 상해 일본총영사관 폭탄 투척ㆍ조계지 경부보 관사 정문에 폭탄 장착 의거를 계획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광복회 사무실이 위치한 여의도에서 만난 나 부회장은 아버지와 함께 중국 각지를 떠돌아야했다. 1931년 상해에서 출생했고, 중경과 사천성 만현 등, 부친의 독립운동 행적과 함께 거처를 옮겼다. 나창헌 선생이 서거한 뒤에는 모친과 함께 국내로 돌아왔다.

그는 부친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부친이 살아계실 때도, 돌아가신 후에도 많은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제의 수탈, 광복 후에는 자유당 이승만 정권의 압력에 시달렸다.

그는 여든이 넘은 나이지만 또렷한 문장으로 과거의 일들을 설명했다.

나 부회장은 “아버지 5형제 중 네 분이 독립운동에 투신하셨다”며 “열성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선 아버지 형제들에게 일제가 고운 시선을 보냈을리 만무했다”고 말했다.

일제는 직접 경제적인 제재를 가했다. 토지개혁이란 명목으로 집안의 가산을 전부 빼앗겼다. 당시 일제는 토지측량 방식을 현대적으로 바꾼다는 명목하에 조선인들의 땅을 빼앗았는데,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잣대를 들이댔다.

해방이 된 후에도 억압에 시달려야 했다. 이승만 정권 치하에서 중용된 친일인사들은 독립운동가 자손을 핍박했기 때문이다. 독립유공자의 자손이란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나 부회장은 1955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지만 취직조차 쉽게 할 수 없었다. 자유당 정권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야 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면서 “(취직이 되지 않아) 미군부대에서 통역을 하고, 주한미경제협조처 등에서 법률고문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큰 박탈감에 미국행을 꿈꿨지만 그마저도 무산됐다. 미시간대 대학원에 장학생으로 합격통보를 받았음에도, 자유당 정권이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4ㆍ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뒤에야 그나마 살길이 생겼다. 나 부회장은 “419혁명 이후에야 (사실상) 처음으로 사회에 나왔다”면서 “먹고는 살아야 겠으니 일반 기업체에 취직을 해서 일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나 부회장에게 아버지 나창헌 선생은 자랑스러운 존재다. 의대를 졸업하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음에도 국가를 위해 헌신한 모습 자체가 자부심의 대상이다.

나 부회장은 “아버지의 독립운동으로 집안은 휘청였지만, 집안보다 중요한 것이 나라”라면서 “아버지가 친일을 했다면 부귀영화를 누렸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다“라고 했다.

나 부회장이 광복회 활동에 열심인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는 2007년 광복회 대의원에 올랐고 지난 2015년부터는 광복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많은 독립운동가 자손들이 선친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다”면서 “그럼에도 다들 선친의 활동을 자랑스러워 한다”고 이야기했다.

김성우 기자/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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