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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히딩크를 그리는 2018년 여름
엔터테인먼트| 2018-07-17 11:23
러시아월드컵 축구대회 일정이 절반쯤 지났을 때, 일찌감치 귀국한 한국대표팀은 TV를 통해 ‘그들만의 잔치’를 지켜봤을 것이다.

한국 없는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에선 현 감독을 유임시키느니 마느니 하더니, 2002년 한일 월드컵때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끈 스콜라리 감독 영입설이 슬그머니 흘러나오기도 했다. 국민은 무슨 영문인지도 몰랐고, 결론은 ‘무산’이었다.

16일 러시아월드컵이 끝난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축구협회 쇄신론이 고개를 들 조짐을 보이자, 불쑥 할릴호지치 감독 영입설이 나왔다. 할릴호지치는 일본 대표팀 감독을 맡다가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직전 퇴출된 인물이다. 우리로 치면, 선수 탓만 하다 쫓겨난 슈틸리케 같은 존재이다.

정체불명의 뉴스와 함께, 차기 카타르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이 우승할 확률은 2500분의 1, 일본의 우승 확률은 250분의 1이라는 기분 나쁜 소식 마저 들려온다.

한국축구가 슬픈 계절을 만나면 늘 히딩크 전 대표팀 감독이 떠오른다. 그의 한국명은 희동구(喜東丘)이다. 주민등록증까지 나왔다. 이는 히딩크 감독에 대한 사랑이 너무도 깊은 나머지, 우리 국민이 지어준 이름이고 만들어준 민증이다. 그가 늘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크다는 뜻은 그가 다시 지휘봉을 잡아도 좋고, 히딩크 같은 사람이 나타나 잠재력 풍부한 한국선수를 맘껏 뽑아 조련했으면 하는 바람의 다름 아니다.

한국 축구계엔 정체불명이 왜 이리도 많은지…. 다음 두 장면은 묘하다.

#지난해 9월 축구협회는 히딩크 감독 측으로부터 한국 감독 맡을 의향이 있다는 제안을 받고도 이를 알리지 않은 사실이 밝혀져 ‘거짓말 파문’에 휩싸였다. 최근 무산된 스콜라리 감독 영입 과정도 10개월전 히딩크 사태와 닮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순수한 선발과정 이외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신태용 감독은 러시아월드컵에서 조별리그 예선 탈락한 뒤, 귀국해 마치 호텔리어들이 VIP손님을 맞을 때 처럼 축구협회 홍명보 전무에게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홍명보 전무가 불과 한 살 위이다. 신 감독은 대표팀 운영을 책임지는 독립적 위치에 있는 신분이라, 국민들은 이런 풍경을 목도하고 적잖이 의아해 했다.

두 풍경만으로 보면, 한국 축구감독이 되려면 축구협회의 수족이 되어야만 가능한 건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심증가는 대목도 있긴 하다.

지금 한국은 우리 축구의 본능을 깨워줄 사령탑을 찾고 있긴 한데, 앞서 떠올려본 상상이 맞다면, 새 감독은 지금 체제가 아닌 새 협회에서 뽑는게 맞다. 축협의 쇄신이 먼저 있어야 하고, 새 사령탑은 나중에 찾아도 된다는 뜻이다.

월드컵이 끝나자 많은 나라에서 ‘새 술은 새 부대에’로 표현되는 쇄신에 착수했다. 일본과 스페인은 월드컵 본선 직전 사령탑을 전격 해임했다. 16강 탈락의 고배를 마신 아르헨티나는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과 결별을 선언했다.

두 대회 연속 월드컵 본선 탈락의 아쉬운 성적표를 남긴 한국은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전략부재와 실수가 겹치며 2연패 한뒤 독일과 최종전에서 2-0으로 이기면서 전패의 수모를 면했다.

연패 당시 “저 친구 왜 국가대표가 됐나”, “축구협회와 감독은 아무 전략이 없는가”, “기본기도 갖추지 못한 모습의 축구행정은 불임행정인가”, “또 특정 학연을 앞세운 정실 축구인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홍명보 감독이 2014년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할 때에도 정실 발탁 논란이 국민을 분노케 한 적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귀를 기울여야 할 얘기들이다. 기존 시스템으로 새 감독을 선임하기 보다는 선수, 전문가, 문체부 등이 함께 새로운 구조를 만들고 새로운 사령탑을 선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장애인 동계 종목, 비인기 종목에 축구협회 예산 중 조금만 떼어줘도 큰 효과를 낼 것이라는 아우성이 들리는 가운데, 한해 무려 1200억원의 예산을 쓰는 축구협회에 대해 지금쯤 철저한 감사를 벌일 때도 됐다는 지적이다.

1승2패의 결과는 ‘하면 되는데, 안했다’는 것이다. 석연찮았던 히딩크 감독 선임 불발 문제가 10개월만에 다시 불거지고 있는데, 행여 ‘말 잘 듣고 허리 잘 숙이는 자기 사람 심기’ 차원이었다면 문체부가 철퇴를 내려야 마땅하다. ‘정체불명’의 행보에 종지부를 찍을 때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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