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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업 진출 14년인데…증권사 “우린 여전히 서자 취급”
뉴스종합| 2018-07-19 11:01
1분기 기준 시장규모 800조원
판은 커졌는데 차별대우는 여전

신탁 계정 사모사채 인수못해
은행·보험엔 적용 안되는 규제

고유계정대 등 대출영업 금지
금융당국 “업권별 규제차등 합당”


신탁 시장은 초 고속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신탁 시장 진출 14년차에 접어든 증권사에만 불리한 영업조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증권업계는 “서자 취급을 받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낸다. 은행ㆍ보험에는 적용되지 않는 규제를 증권사에만 적용하고 있는 탓이다.

대표적 ‘차별 대우’는 증권사의 신탁 계정으로는 사모사채를 인수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는 점이다. 은행만 가능했던 신탁업 겸업이 증권사에도 허용된 건 지난 2005년. 당시 금융당국은 증권사가 은행과 달리 여신전문 금융기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신탁업을 영위하더라도 해당 계정으로 대출은 할 수 없도록 규제했다. 증권사가 대출로 정의돼 있는 사모사채 인수를 할 수 없는 이유다.

반면 은행과 보험사는 신탁 계정으로 사모사채 등 대출 성격의 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증권업계는 사모사채 인수를 무조건 대출로 인식하는 것은 구시대적 사고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어디에 투자할지 미리 정하지 않고, 고객의 지시 없이도 신탁회사가 돈을 맡아 알아서 굴리는 ‘불특정금전신탁’의 경우라면 사모사채 인수가 주로 신탁회사의 의중에 따라 결정되므로 대출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불특정금전신탁은 지난 2004년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도입되면서 신규 취급이 금지됐다. 지금은 고객이 지정한 상품에만 투자할 수 있는 ‘특정금전신탁’을 위주로 시장이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증권업계는 “이 경우 사모사채 인수를 ‘신탁사의 대출’이 아닌 ‘고객의 대출’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모사채 인수를 대출로 인식한다 하더라도, 초대형IB를 육성하겠다는 금융당국이 증권사의 대출 경로를 막아서고 있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논리도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이 하기 힘든 벤처ㆍ혁신기업에 대한 과감한 대출을 끌어내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자기자본을 확보한 증권사를 초대형IB로 지정하고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내걸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채, 통화안정증권 외 채권 영업이 금지된 은행은 신탁을 통해 사모사채를 인수할 수 있는데, 오히려 채권 인수를 통한 기업여신이 본업인 증권사들은 신탁이라는 틀만 쓰면 규제가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이밖에도 금융투자업계는 ‘고유계정대’(고유계정에 대한 일시적인 자금의 대여)에 대한 규제를 놓고도 목소리를 높인다. 현행 금융투자업규정은 신탁업을 겸업하는 은행ㆍ보험사ㆍ증권사가 고객의 운용지시를 불가피하게 수행할 수 없을 경우, 신탁 계정에서 고유 계정으로 일시적인 자금 대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예컨대 특정 자산 매수를 주문한 신탁 고객이 영업시간을 넘긴 뒤에야 자금을 맡겨 지시대로 운용이 불가능한 경우, 하루 동안 ‘놀게 생긴’ 신탁 계정 내 자금을 고유 계정에 대여해주는 것이다. 물론 해당 자금은 그 다음날 하루 만큼의 이자와 함께 신탁 계정으로 돌아와 고객 주문대로 운용된다. 그러나 규정으로는 허용된 신탁 겸업 증권사의 고유계정대를 금융당국은 인가사항에 포함시켜 금지하고 있다. 고유계정대 역시 증권사의 신탁업 겸업 인가 시 금지됐던 ‘대출’에 포함된다는 논리다. 은행과 보험사의 경우 ‘고객의 주문을 이행할 수 없는 불가피한 경우’에만 해당되면 별다른 제한을 받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에 대해 “같은 업을 영위하더라도 그 본업의 특성을 고려한 개별 규제는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증권사가 신탁업을 겸업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퇴직연금 시장에 보다 다양한 업권을 참여시키기 위한 ‘특수한 목적’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증권사의 신탁업 겸업이 허용된 2005년은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해이기도 하다. 퇴직연금은 보험이나 신탁계약 형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증권사가 퇴직연금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신탁업 겸업을 허용해야 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다양한 업권이 신탁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맞지만, 이것이 곧 모든 참여주체가 동일하게 신탁사업에 나서야 하는 당위가 되지는 않는다”며 “각 업권별로 자본 건전성이 차이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고려 없이 모든 사업을 동일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본시장에 도움이 되는 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금융위는 지난해 초 기획재정부 및 법무부와 함께 ‘신탁업 발전을 위한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를 발족, 운영하고 있다. 해당 TF가 발족되기 앞서 각 업권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별도 TF가 운영됐고, 이때 사모사채 인수 관련와 관련해 증권업계 애로사항이 당국에 전달됐다. 그러나 합동 TF가 발족된지 1년 6개월이 흘렀지만, 어떤 논의가 있었고 어떤 결론에 이르렀는지 당국은 일체 함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선진 행정은 시장 참가자들과의 적극적인 소통 노력에 달렸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이러한 노력이 오히려 퇴보한 느낌이 적지 않다”며 “합동 TF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한편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은행ㆍ증권ㆍ보험ㆍ부동산전업신탁사 등 전업권을 포함한 신탁 규모는 800조859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말 775조2000억원 대비로는 3%가량 증가한 것이지만,2016년 말 대비로는 무려 100조원가량 늘어난 것이다.

최준선ㆍ김나래 기자/ticktoc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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