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점심의 사회학⑭]“공짜 음식이지만 맛도 영양도 만족…우리엔 폭염 속 점심 한끼가 보양식”
뉴스종합| 2018-08-03 10:21
[서울 영등포구 홈리스복지센터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 모습. 성기윤 수습기자/skysung@heraldcorp.com]

-저마다 사연 하나 품고 찾는 무료급식소…정직한 상차림
-대부분 쪽방촌 주민ㆍ노숙인…50여개 의자 조촐한 식탁
-102세 할머니 자원봉사 ‘구슬땀’…“잘 먹는 것 보면 흐믓”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ㆍ성기윤 기자] 대부분 직장인들이 휴식과 함께 서둘러 식사를 끝마치는 점심시간은 누군가에겐 하루 중간에 먹는 가벼운 한끼에 불과하다. 하지만 오갈 곳 없는 노인들에게 무료급식소에서 먹는 점심은 하루 중 가장 든든한 한끼를 먹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종일 내리쬐는 뙤약볕을 뚫고서라도 무료급식소를 찾는 이들에게 이곳에서 주는 정오의 한끼의 가치는 천금과도 같다.

서울 영등포구의 홈리스복지센터 무료급식소는 그런 노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매일 오전 11시부터 식사 준비로 들썩인다. 봉사자들은 앞치마와 모자를 두르고 구슬땀을 훔쳐가며 식재료를 다듬고 요리에 박차를 가한다. 흔히 무료 급식이라고 하면 맛과 영양을 향한 기대치가 낮아지게 마련이지만 이곳에선 그런 생각은 편견일 뿐이다. 정병창 홈리스복지센터 사무부장은 “주방장 분이 요식업계에서 오래 일하시던 분”이라며 무료급식소가 맛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이곳 봉사자는 대부분 교회 등지서 온 중장년 여성이지만 최종순(102) 할머니처럼 급식소 손님보다 연배가 훨씬 많이 나가는 이도 있다. 이북에서 월남했다는 최 할머니가 실제로는 주민등록상 생일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고 귀띔한다. 그는 부침개 한 장에 1000원, 믹스커피 한잔을 200원에 팔아 수입 전액을 후원하고 있다. “사람들 잘 먹는 거 보면 뿌듯하다”는 게 소박한 이유의 전부다.

많은 이들의 헌신과 땀으로 만든 음식은 간이 탁자 6개와 플라스틱 의자 50여개로 마련한 조촐한 식탁위에 올라간다. 이곳 고가도로 밑 텐트에서 설치된 무료급식소에선 밥상 위로 자동차가 달리고 담벼락 너머로 지하철이 지나간다. 처한 상황은 썩 여유롭지 않지만, 이곳에서 먹는 한끼에 감사를 표하는 모습에선 정중한 노신사의 품격이 배어나왔다.

[서울 영등포구 홈리스복지센터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의 한끼. 성기윤 수습기자/skysung@heraldcorp.com]

이곳에는 가족 없이 외따로 떨어진 채 인근 쪽방촌 등지서 거주하는 이들이나 인근 노숙인 등이 밥뜸 뜨는 냄새를 찾아 모여든다. 밥상에 둘러앉은 이들 사이에서 3040 젊은이들이 곳곳에 눈에 띄지만 대부분 혼자서는 끼니를 든든하게 챙겨 드시기 어려운 나이든 할아버지 손님들이 주 단골이다.

예전엔 500명 가까이 매일 찾아왔지만 이젠 노숙인이 줄고 무료급식소가 늘어나 350~400명 정도가 오고 있다. 덕분에 365일 연중무휴던 이곳도 올 여름 폭염속 5일간 휴가를 가졌다. 그래도 하루라도 쉬면 큰일날라 총 12~15개 팀이 돌아가며 쉴새 없이 일하는 건 매한가지다. 매일 400명의 밥상을 책임지는 이곳은 개인후원 250여명, 단체 20여곳이 지원하고 있다.

평범한 삶을 살다 불현듯 밥 한끼가 아쉬운 상황에 처한 이웃들은 이곳에서 먹는 한끼가 삼시세끼 중 유일하게 부담없이 푸지게 먹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다.

지난달 24일 무료급식소를 찾은 김경동(45) 씨는 2002년부터 거의 매일 오는 단골이다. 그는 “사고로 뇌와 척추가 다쳐 다리가 불편한데 따뜻한 밥을 주니 고맙다”며 한입 가득 밥술을 떴다. 그는 인근 쪽방촌에서 이 여름 폭염과 싸우고 있다.

흰 셔츠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노신사 A(70) 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 도와줘서 고맙다”며 “바람도 쐴 겸 매일 오는데 여기에 오면 마음이 그렇게 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기 당해 전재산을 날렸고, 이젠 나이가 들어 노가다도 할 수 없어 돈을 못 버는 몸뚱이만 남았다”며 젊은 날을 회상했다.

이곳에 사연 없고 함부로 괄시할 수 있는 궁핍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료급식소 운영을 맡고 있는 최은화 사막에길을내는사람들 사무국장은 “단순한 밥 한끼를 먹으러 오시는 분들이 많지만 몸과 마음의 건강을 찾도록 돕고 간단한 일자리 연계로 더 따뜻한 밥상을 드실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며 “급식은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에 관련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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