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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교수가 쓴 ‘삶과 죽음’의 기록들
라이프| 2018-10-05 11:20
“봄이 싫었다. 추위가 누그러지면 노동 현장에는 활기가 돌고 활기는 사고를 불러, 떨어지고 부딪혀 찢어지고 으깨진 몸들이 병원으로 실려왔다. (…)봄은 내게 피와 죽음의 바람이 부는 계절이었다.”

외상외과의사 이국종의 에세이 ‘골든아워’(1,2권)는 이렇게 시작된다. 온 생명이 기지개를 펴는 찬란한 봄이 이렇게 잔인할 수도 있다는 데 숨이 턱 멎는다. 의사들이 대체로 외면하는 길 위에서 몸이 터져 나간 이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를 사람들은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그 속엔 수십조원의 복지 예산이 넘쳐나는데 고통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린다는 의료시스템 하나 갖추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들어있다. 할 말을 꾹꾹 참은 듯 보였던 그가 마침내 썼다. 중증외상센터의 현실을 기록하지 않으면 금세 잊힐지 모른다는 다급함에서다.

‘골든아워’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60분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240분이 넘는다. 책은 2002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사선에서 분투한 환자와 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소방대원들의 이야기다. 잠 못 이루는 밤마다, 짧은 휴식 시간마다 외상외과 의사로서 맞닥뜨린 냉혹한 현실, 병원의 일상, 환자들의 사연, 의료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록한 생생한 다큐멘터리이자 사색과 고뇌의 기록, 중증외상 의료시스템 구축을 위해 내내 동분서주한 분투기이자 의료 현실에 대한 냉정한 보고서이다.

에세이의 상당부분은 사고현장과, 피로 홍건한 수술방의 급박한 모습을 담고 있다. 백령도 수중 작업 중 동아줄에 몸이 휘감겨 경각의 위험에 처한 어부의 이야기, 취업준비생으로 아르바이트 중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를 절단하고 대기업에 취직한 초긍정의 젊은이, 칼에 찔리고 터지고, 밟힌 가정폭력의 실태, 전설이 된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총탄 여섯발을 맞은 피랍 선박 석해균 선장 이야기 등 숨을 보존하기 위한 사투와 치열함이 펄떡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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