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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라 긴급체포?…경찰 무리한 영장신청 ‘국제망신’
뉴스종합| 2018-10-11 11:14
경찰이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 화재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고양 저유소 화재’ 피의자 외국인
경찰 두 차례 영장신청 기각

송유관공사 관리실태 수사는 부진
‘외국인에 책임전가’ 비난 들끓어
뒤늦게 전담팀 편성 수사진행키로


경찰이 고양 저유소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스리랑카인 A(27) 씨에게 무리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시민단체들은 안전시스템에 대한 확실한 수사 없이 이주노동자에게 화재책임을 떠넘긴 경찰수사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경기 고양경찰서는 지난 9일과 10일 중실화 혐의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두 차례 A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 인근 강매터널 공사장에서 풍등을 날려 폭발 화재를 유발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CCTV 등 증거자료를 확보했고, 지난 8일 A 씨를 긴급체포했다.

하지만 신청한 구속영장은 검찰에서 기각됐다. A 씨는 긴급체포 48시간만인 지난 10일 풀려났다. 중실화는 실수로 불을 저질렀을 때 적용되는 혐의다. 고의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한 부주의가 전제돼야 한다.

경찰은 A 씨가 화재 예방에 소홀했다고 봤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저유소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A 씨는 공사현장에서 쉬는 시간에 풍등을 날렸다고 진술했는데, 풍등을 쫓아가다 저유소 잔디에 떨어진 것을 보고 되돌아 왔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경찰은 풍등이 저유소에 떨어졌음에도 풍등을 쫓아가다 돌아온 A 씨의 행동 등을 문제삼은 것으로 보인다.

A 씨는 향후 불구속, 출국금지 상태에서 수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A 씨에 대한 변호를 맡았고, A 씨가 속해있는 민간 업체도 변호사를 선임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 기각을 놓고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사건 증거인 A 씨의 CCTV 영상이 확보됐고, 도주의 우려도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경찰은 화재가 발생한 대한송유관공사에 대한 수사에 있어서는 지지부진했다. 사건 발생 후 경찰이 배포한 자료에는 “(A 씨가 날린) 풍등과 저유소 화재 간 인과관계를 정밀 확인하고 재차 합동 감식을 진행하겠다”는 향후 수사방향이 담겼을 뿐, 공사측의 안전관리 소홀에 대한 내용은 전무했다.

시민단체들은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 A 씨를 내국인과 다르게 차별적으로 대우했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논평을 내고 “수사기관과 (사건에 대한) 언론의 일련의 조치는 이주민에 대한 시선이 어떤지를 드러냈다”면서 “저유시설을 위험물안전관리법에 따라 감시, 관리하고 사고를 예방해야 하는 시설관리, 감독자들의 부주의가 있었던 점이 보다 엄밀하게 조사되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주민 인권을 위한 시민단체인 아시아의 친구들 한 관계자도 “석유관 공사의 안전관리 그동안의 실태 등에 대한 자료확보가 우선이 돼야 하는데 전혀 진행이 안됐다”면서 “(경찰 수사에서는) 노동자가 풍등을 얼마나 쫓아갔는지 거리만 재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경찰은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서야 진화에 나섰다. 10일 경기북부청에 전담팀을 편성하고, 사건에 제기된 의혹 전반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아직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외교부 한 관계자는 “A씨에 대한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직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고 했다.

김성우 기자/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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