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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양심적 병역 거부는 무죄”…14년만에 판례 바꿔
뉴스종합| 2018-11-01 12:57
양심적 병역 거부 처벌 반대와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의 팻말. [사진=연합뉴스]

-“집총거부자에 병역 강제는 양심의 자유 침해” 무죄 취지 판결
- 4인 대법관 ”주관적 사정은 징병 거부 사유 아니다“ 반대의견도
 

[헤럴드경제=좌영길ㆍ유은수 기자]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체복무제를 따로 두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이어 대법원도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았던 판례를 14년 만에 변경하면서, 징병제 개선 논의는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34)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판결로 대법원에 계류 중인 227건의 병역거부 사건도 기존 판례를 벗어나 심리를 하게 될 전망이다.

전원합의체 13명 가운데 다수의견을 낸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한 8명은 양심적 병역 거부가 병역법 제88조 1항이 규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헌법상 국방의 의무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단지 국방의 의무를 구체화하는 법률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방법으로 정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 이행을 거부할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들에게 형사처벌 등 제재를 통해 집총과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판결했다. 다만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판단하기 위해 가정환경, 성장과정, 학교생활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병역거부자가 제시해야 할 소명자료는 구체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가 인정한 양심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사전적 의미와 달리 헌법상 양심을 말한다. 재판부에 따르면 헌법상 양심이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를 일컫는다.

다만 김소영, 조희대,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 등 4명은 처벌 필요가 있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한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이 개인적인 신념이나 가치관, 세계관 등과 같은 주관적 사정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병역거부의 근거가 되는 양심의 존재 여부를 심사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완벽한 판단 기준을 설립할 수 없다는 것도 반대 이유였다.

이 사건 1심에서 오 씨를 변호한 백종건 변호사는 선고 직후 “양심의 자유라는 개념이 헌법책 속에만 있었는데 시민의 삶의 영역으로 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며 “기존 대법원 판례와 다르게 하급심에서 100건이 넘는 무죄 판결이 있어 가능했다.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대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백 변호사도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병역을 거부해 현재 변호사 개업을 제한받고 있는 상황이다.

오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정당한 사유 없이 현역 입영을 거부한 혐의로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대법원이 2004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놓은 이후 일선에서는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하는 관행이 굳어졌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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