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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기술 유출 매년 110건…전문 수사인력은 여전히 부족
뉴스종합| 2018-11-23 09:00
-중소기업 피해만 86%…대기업에 비해 6배 많아
-전문인력 특채 無…수사관 교육 기회도 두 번뿐
-“전문인력 양성해야…산업기술보호과 설치해야”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 #1.국내의 디스플레이용 기판유리를 생산하는 회사에서 생산공정 관리기술자로 근무하던 A 씨는 지난 2013년 중국의 경쟁사로부터 솔깃한 이직 제안을 받았다. A 씨의 당시 연봉의 두 배에 달하는 1억6000만원 연봉과 각종 보너스를 받는 조건으로 당시 직장의 영업 기밀을 달라는 것. 돈에 눈이 멀었던 A 씨는 결국 1년 동안 국내 회사의 생산설비 설계도면 등 영업기밀을 유출했다. A 씨는 특히 퇴사 직전 생산설비 설계도면을 집중 열람해 최첨단 퓨전 공법을 중국 업체에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2. 직장에서 대기오염물질 저감설비인 축열식 연소산화장치(RTO) 판매와 영업 업무를 맡았던 B 씨는 한 중국 업체로부터 기술 합작 제안과 동시에 뒷거래도 제안 받았다. B 씨는 결국 지난 7월 RTO 관련 비밀자료 일부를 이메일로 중국 모 공사 대표이사에게 넘기는 대가로 8000만원을 받았다. 그는 퇴직 전부터 RTO 각종 도면과 운전 매뉴얼, 부품단가 등 파일 수천여 개를 개인용 저장매체에 옮겨두고 해당 공사와 기술 이전 계약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산업기술 유출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전문 수사 인력을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 경찰이 산업기술 유출사건 140건을 수사해 334명을 검거했는데 이를 담당한 수사 인력은 59명에 그쳤다.

23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올해 8월까지 경찰이 검거한 산업기술 유출사건은 총 637건으로 한 해 평균 110여 건 발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에서 발생한 산업기술 유출사건이 550건으로 전체의 86.3%에 달했다. 90여 건에 불과한 대기업과 비교하면 6배 이상 많은 것이다.

산업기술 유출 사범은 주로 기업 외부자보다는 내부자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637건 중 551건(86.5%)이 내부자 소행이었고, 86건(13.5%)이 외부자의 범행이었다.

그러나 이를 전담할 수사관은 턱없이 부족하다. 경찰이 지난 2010년 7월 5개 지방경찰청에서 설치돼 있던 산업스파이 범죄 관련 경찰 전담수사대를 확대 시행한데 이어 지난해 2월엔 전국 17개 지방경찰청에 산업기술유출수사팀을 확대 설치하는 등 인력을 늘리고 있지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수사관들의 전문성을 높일 관련 인프라 역시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산업기술 유출 수사관을 특채하는 제도도 없고 현 인력이 전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수사연수원 전문화 교육(2주)과 민간기관 위탁 전문화 교육(1주)가 전부다.

전문가들은 산업기술 유출을 수사하는 전문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장항배 중앙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 환경에서는 융ㆍ복합적 지식을 바탕으로 복잡한 기술유출 사건을 입체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전문인력 양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경찰청 내 산업기술 유출 예방과 수사를 전담하는 산업기술보호과를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주락 경기대 교수는 “수사관에게는 범죄수법 및 법률관련 지식, 디지털포렌식 기술뿐만 아니라 최신 트렌드와 기업의 전산시스템 지식이 필요하다”며 “경찰청에 산업보안센터 신설 등 산업기술유출수사 담당 조직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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