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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우먼파워
엔터테인먼트| 2018-12-27 11:32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 2018년 한 해 동안 방송계에서는 그 어느때보다 여성 방송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이영자, 박나래, 김숙, 송은이, 홍진경, 장도연 등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영화계에서도 김혜수, 손예진, 한지민, 공효진, 김태리, 김다미 등 여배우들이 기대 이상의 흥행을 올리며 스크린 여풍을 이끌었다. 여성 연예인들의 큰 활약은 2109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그동안 예능계는 남자들이 주도했다.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김구라, 전현무, 양세형은 너무 많이 나왔다. 이들이 주도하는 프로그램이 마치 한국 예능의 표준인 양 착각할 정도였다. 그중에는 주간 단위 프로그램을 10~12개나 맡은 사람도 있었다.

이들이 자주 나오는 이유는 그들이 그래도 현실적인 대안 내지 차선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 있지만, 안정적으로 가자는 제작진의 안이한 생각도 포함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생각이 콘텐츠를 단조롭게 만드는데 일조한 셈이다.

따라서 2018년 한 해동안 여성 예능인들이 많이 나온 것은 페미니즘 등 시대적 요청도 있었지만 새로운 콘텐츠를 찾으려는 요구도 크게 한몫했다.

그동안 방송계에는 여성들이 주가 되는 예능은 실패한다는 불합리한 속설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이 남성 예능인들의 출연을 관성처럼 지속화시키기도 했다. 대한민국 예능판이 어느새 남자들의 세상이 돼 있었다. 몇몇 남자들에 의해 주도되는 예능계는 비슷비슷한 모양새를 지속했다. 심지어 너무 자주 나오는 몇몇 남성 예능MC에 ‘방송적폐’라는 말이 붙기도 했다. 이에 대한 개선책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여성 예능인의 활약으로 비슷비슷한 프로그램의 느낌을 조금 바꿔주는 계기가 됐다. 이는 여성 예능인들을 구색용 또는 수박겉핥기에서 벗어나 조금 더 깊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에 따라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여성예능인의 특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밥블레스유’는 여성 예능인들의 케미와 시너지를 잘 보여주었다. 15년 넘게 우정과 의리를 다져온 ‘네 언니들’를 보면서 흐뭇해졌다. “(최)화정이 언니가 결혼하면 우리는 엄마를 잃는 기분일거야”라는 코멘트가 나올 수 있는 유일한 프로그램이다.

2018 KBS 연예대상을 받은 이영자는 재주는 많지만 자신의 재주를 펼칠 수 있는 ‘판’이 깔리지 않았다. 하지만 영자는 실망하지 않고 ‘안녕하세요’ 등 소수의 프로그램만 하면서 자신의 색깔을 조금씩 강화시켜 나갔다.

영자는 걸쭉한 말솜씨와 순발력만 있는 게 아니다. 인간미에 공감력까지 갖췄다. 이 공감력은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경험에 바탕하고 있어 신뢰할만하다.

언제부터인가 ‘안녕하세요’에서 고민을 말하는 사람들을 위해 영자가 시원한 해법을 제시해줄 것을 기다리게 됐다. 충분히 들어주고 흥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솔직하게 조언을 하기 때문이다. 영자가 사연자의 상처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진정 어린 조언을 하는 모습을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이영자는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도 프로그램을 살리는 역할을 했다. 영자는 먹방의 달인임은 물론 맛에 대한 토크는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아티스트 경지에 이른 상태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약간 섞인 그녀의 토크는 푸근하고 좋은 인성이 느껴진다. 그래서 ‘영자의 전성시대’는 2019년에도 이어질 것 같다.


박나래는 초기에는 센 캐릭터, 비호감 캐릭터 였지만 점점 편안한 캐릭터로 변화해나갔다. 오랜 무명생활을 거쳐 힘들게 잡은 방송기회여서 분장과 망가짐이 불편할 정도였지만, 이제는 주류 예능의 중심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그는 ‘나 혼자 산다’ 등에서 연기, 토크, 분장, 진행 등 거의 모든 걸 할 수 있는 예능인인데다 관계와 소통에도 강해 프로그램마다 뻔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기가 좀 있다고 해서 대충대충 하지 않고 참가하는 프로그램마다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이 식상함을 느끼지 않게 한다.

김숙은 ‘밥블레스유’ ‘서울메이트’ ‘배워서 남줄랩’ ‘랜선 라이프’ ‘연애의 참견’ ‘풀 뜯어먹는 소리’ ‘주말 사용 설명서’ 등 워낙 다양한 예능에 출연하고 있다. 김숙은 토크도 잘하고 리얼리티물 모두 가능한 전천후다. 뿐만 아니라 걸크러시(쑥크러시), 남성을 압도하기도 하는 거침없는 부분들이 요즘 사회분위기와 어울리는 지점이 있다.


송은이도 지난 한해 그 어느때보다도 TV 노출이 많았다. 송은이는 지상파 중심에서 MCN, OTT, 1인 미디어 등으로 다변화하는 플랫폼 구조에서 콘텐츠를 기획하는 프로듀서 느낌이 더해졌다. 그것은 송은이가 웃음 포인트는 조금 약해도 여성 예능인들과 공조하고 분업하면서 존재감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이들은 모두 공교롭게도 ‘미혼’이다. 결혼을 안한 것이건, 못한 것이건, 비혼(非婚)이건 상관없다. 모두 자신의 처지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도 좋게 비쳐졌다. 수영복 입은 몸매를 그대로 공개한 이영자는 큰 찬사를 받았다. '밥블레스유'의 막내인 김숙이 44세이니 이들은 모두 중년여성이라 할 수 있다. 좋은 것은 좋다 하고 힘든 건 힘들다고 표현한다. 혼자 나이 들어가면서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이 2019년에는 좀 더 차별화된 예능을 이끌어갈 수 있는 해가 되길 기대한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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