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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경에 빠진 중국의 정신문명… 1980년대 ‘허무주의’를 소환하다
라이프| 2018-12-28 11:18

현재 경제성장과 부를 과시하는 중국의 모습에서 개혁개방 이전 중국의 모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개혁개방 시기 중국 지식인들이 혁명기와 마오쩌둥 시대를 어떻게 평가하고 정리해 나갔는지 그 속사정은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중국의 소장학자 허 자오톈의 ‘현대 중국의 사상적 곤경’(창비)은 80년대 이후 팽배해진 중국의 허무주의의 이면을 깊이있게 들여다보며, 드물게 이 시기를 소환한다.

자오톈은 전통적으로 의미와 가치를 추구해온 중국이 어쩌다 실리만 따지고 허무주의에 빠지게 됐는지, 그 실마리가 1980년 전국을 휩쓴 ‘판샤오 토론’(또는 ‘인생의 의미 토론’)에 있다고 본다. ‘판샤오 토론’은 수 천만명의 청년 독자를 거느린 ‘중국청년’ 잡지사에서 시작돼 ‘중국청년보’와 ‘공인일보’ 양대 신문이 토론에 참여하면서 대대적인 반향을 일으킨 지상토론이었다. 판샤오는 당시 두 청년의 이름을 합쳐 만든 이름으로, 일명 ‘판샤오 편지’는 일대 회오리를 일으켰다.

“혹자는 시대가 전진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저에게는 그 시대의 든든한 어깨가 만져지지 않습니다. 인생의 길은 어찌해서 갈수록 좁아드는지, 저는 벌써부터 너무 지쳐버렸습니다”며, 불안과 허무를 드러낸 편지는 청년세대에게 깊은 공감을 얻었고 다양한 해석과 담론을 낳았다.

자오톈은 이 사건을 보다 면밀히 검토해 당시 중국공산당과 지식인들의 대응이 적절치 못했음을 지적한다. 즉 중국공산당은 청년세대에게 개혁개방의 국가 기획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찾도록 추동하고, 지식계는 그토록 갈구하는 자아를 인정하고 표현함으로써 정신적 곤경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했는데, 이는 피상적 해결방안이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난 30년간 중국은 정신적 위기가 이어져 왔다는 게 자오톈의 분석이다.

자오톈은 청년세대의 허무주의적 발언은 그 이면에 이상주의적 격정과 에너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를 읽지 못하고, 사회주의 실천의 유산을 새시대에 맞게 어떻게 소화하고 흡수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자오톈은 이어 1980년대 신계몽주의와 90년대 자유주의-신좌파 논쟁도 메스를 들이대 계몽주의의 한계와 중국혁명의 의미를 재조명한다. 자오톈은 문혁 이후 역사적 에너지가 현재와 과거의 이원적 대립에 갇혀 진정한 과제를 사고할 동력으로 기능하지 못한 채 사회주의 과거를 폐기한 데 안타까움을 내비친다. 그의 해법은 역사와 현실에서 길을 찾는 것이다. 이론보다 현실에 발을 디디고 현상을 주의깊게 살펴 방향을 잡아나가야 길을 잃지 않는다는 얘기다. 시진핑의 중국의 미묘한 결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윤미 기자/m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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