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영역 다르고 비행 허가도 수일 걸려
160억원 들인 기상항공기 ‘무용지물’
올 겨울 데이터 확보·축적 물 건너가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전국이 대체로 맑은 날씨를 보이는 가운데 충청내륙과 남부내륙에는 안개가 짙게 낀 곳이 있습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지난 13일이었지만 기상청의 기상정보는 이와 같았다. 지난달 초 기상청은 황사 영향권에서 벗어났다고 발표했지만, 환경부는 황사 영향으로 미세먼지 농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예보했다. 올 겨울 최악의 고농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지만 국립환경과학원은 서해상 대기질을 관측할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기상항공기를 단 한 번도 띄우지 않았다.
이 모든 환경부와 기상청의 엇박에는 다 이유가 있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는 둘 다 자연적이거나 인위적 요인 모두에서 배출이 된다. 그런데 인위적 요인인 미세먼지는 환경부 산하기관인 국립환경과학원, 한국환경공단이 담당하는 반면 자연적 요인인 황사를 비롯한 기상 정보는 기상청이 전담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국립기상과학원 관계자는 “같은 환경부 산하기관이지만 기상청과 국립환경과학원 간 업무가 분할돼 있는 한 바람 방향, 기류 변화 등 기상 조건(기상청 전담)에 따라 미세먼지가 어떻게 이동하는지(국립환경과학원 전담)에 대한 입체적 분석은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지난 13일의 맑은 서울 하늘(?) [출처 연합뉴스(좌) 기상청(우)] |
▶올 겨울 기상항공기는 날지 못했다= 올 겨울 들어 최악의 고농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지만 환경부는 올 겨울 서해상 대기질 항공 관측을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오염물질의 이동 경로와 성분, 미세먼지의 생성 과정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축적된 항공 실측 데이터가 반드시 필요한데도 말이다.
지난 23일 헤럴드경제가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기상청을 통해 입수한 국립기상과학원의 ‘기상항공기 연간운항 계획서’와 ‘기상항공기 운항일지’에 따르면 국내 단 한 대뿐인 종합기상관측용 기상항공기 ‘킹 에어 350HW’는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이 잦았던 올 겨울 단 한 차례도 서해상 대기질을 실측하지 않았다.
기상비행기가 서해상에서 대기질 관측을 위해 운용된 건 지난해 4월 첫 관측 이후 지금까지 단 다섯 차례뿐이다. 당초 기상항공기는 지난해 4~6월에만 총 12차례 서해상 대기 중 오염물질의 흐름과 조성 등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할 예정이었다. 지난해 2월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인 단 20일간 무려 15회나 기상비행기를 집중적으로 운용해 활용한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단독] 160억 기상항공기, 올 겨울 미세먼지 관측 한번도 못했다
이는 지난해 1월 기상청이 기상항공기 도입 배경으로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 증대에 따른 정기 관측과 관련 예측모델의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던 것과도 배치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지난해 1월 기상청이 밝힌, 기상항공기 도입 배경 [출처 기상청] |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다= 기상항공기 운영을 총괄하는 곳은 국립기상과학원이다. 기상항공기 활용 요청이 들어오면 국립기상과학원은 이에 따른 항공 운항 계획을 세우고 국토교통부의 비행 허가를 받는다.
그런데 미세먼지 관련 항공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서 기상항공기 활용 연구를 요청해야 하는 국립환경과학원은 기상항공기 성능을 지적한다. ‘미세먼지 관측용’ 기상항공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상청은 어떨까. 항공기를 도입한 곳은 기상청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미세먼지 업무는 기상청 소관이 아니다”라며 반박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요청이 있으면 얼마든지 기상항공기를 띄워 서해상 대기질 입체 관측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상항공기 운용 주체부터 도입, 비행 허가까지 모든 소관이 각기 따로 있다 보니 경계는 모호하다. 이런 영역은 방치되기 쉽다. 익명을 요청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 관계자는 “과학적인 데이터를 확보하고 축적하기 위해서는 부처를 넘나드는 유기적 결합이 필요하다”면서 “그런데 기상에 따라 미세먼지가 어떻게 해소되는지, 어디가 연구를 해야 하는지 환경부와 기상청 모두 모른다는 자세처럼 나온다”고 꼬집었다.
이렇다 보니 환경부가 “오는 황사철에 두 곳이 한시적으로 팀을 꾸려 미세먼지 예보를 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이는 매우 한정적으로 움직이는 팀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온다. 겨울철 고농도 미세먼지에도 기상비행기가 항공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단 한 차례도 하늘로 뜨지 못했던 것이 이를 방증한다.
▶실시간 항공 데이터 수집 가능할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기상항공기가 뜨려면 국토교통부의 비행 허가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미세먼지는 국토부의 허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국립기상과학원 관계자는 “최소 3~4일 전에 국토부에 요청을 해야하고 승인 결과에 따라 비행기를 띄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범부처 미세먼지 프로젝트 사업단이 추진하고 있는 미세먼지 관측 전용 항공기인 ‘비치크래프트 1900D’가 도입되더라도 국토부와 군의 허가 승인 조건에 의해 실시간 항공 실측이 사실상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되는 이유다.
미세먼지는 수많은 오염원에 의해 발생해 수시로 이동할 수 있고 시시각각 바뀌는 기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 복잡한 문제인데, 허가 절차에 따른 시간이 수일 소요되면 제때에 항공기가 하늘을 날 수 없다.
사업단은 미세먼지를 1년 내내 관측할 수 있는 항공기 ‘비치크래프트 1900D’를 임대해 겨울이 시작되는 지난달부터 서해안 대기질을 관측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항공기는 현재 도입이 두 달 이상 늦어지고 있다. 미세먼지 사업단장인 배귀남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은 “2월 중 항공기가 국내 도입되면 국토부 비행 허가를 비롯한 전반적인 운영 계획에 대해 안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올 겨울 미세먼지 항공 데이터 수집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합니다. 앞으로도 잘 될지 모르겠고요.”
업무가 쪼개져 비난을 피할 요량으로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사이, 익명을 요청한 국립기상과학원 관계자는 한숨을 쉬며 이 같이 말했다.
한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중국발 미세먼지 등 대기 오염을 항공에서 실시간 관측할 수 있는 해양환경위성 ‘천리안 2B호’ 조립 막바지 단계를 거치고 있다. 천리안 2B호는 우주환경시험 돌입 이후 올해 말쯤 발사될 예정이다.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