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미술위원회 “제대로 된 전시 장소 찾아야”
‘우리의 빛’은 높이 4.5m의 나ㆍ우리ㆍ지금ㆍ여기ㆍ서울ㆍ오늘ㆍ역사 등 7개 단어가 조합된 하얀색 조형작품이다. 해가 지면 시민의 삶의 모습을 다채로운 빛으로 보여주는 영상 캔버스로 변한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지난 14일 서울광장 서편 ‘제100회 전국체전ㆍ제39회 전국장애인체전’의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시계탑 옆으로 흰색의 한글 조형물이 서 있다. 높이가 4.5m로 제법 크지만, 광장을 지나는 시민들 중 이를 눈여겨 보는 이는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글자 사이 사이로 까맣게 먼지가 채워져 있다. 외관이 흰색이라 오염은 더욱 도드라져보였다. 중간 쯤에는 성미 고약한 누군가가 붙인 ‘태극기 집회’ 안내 스티커 조차 남아있다. 서울시가 2017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네번째 좌대(Fourth Plinth)’를 벤치마킹 해 설치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오늘’의 현재 모습이다.
‘오늘’은 시민 투표로 뽑은 작품을 순환 전시하는 좌대다. 현재 전시 중인 ‘우리의 빛’이 2회 공모서 선정된 작품. 지난달로 애초 약속한 8개월간의 전시기간이 종료돼 조만간 성동구 서울하수도과학관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이 작품을 끝으로 ‘오늘’의 좌대는 서울광장에서 퇴출 될 처지다. 서울시가 3회 전시작을 아예 찾지 못한데다, 전시 장소에 대한 적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아 사업 방향 자체를 재검토하고 있어서다.
시 관계자는 “프로젝트를 폐지할 지, 아니면 장소만 다른 곳으로 옮겨 순회 전시 형식으로 할 지 내부에서 고민 중이며, 아직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간 전문가 자문기구인 시 공공미술위원회의 최근 회의에선 현재 위치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주를 이뤘다. 지난달 중순께 열린 2차 회의록을 보면 한 위원은 “서울광장은 아닌 것 같고 제대로 된 장소를 찾아야한다. 장소에 기반한 공공미술이 아니라 장소를 만드는 공공미술로 포지션을 바꾸는 게 좋지 않나”라며 전시 장소 이전을 제안했다. 이 밖에도 “근본적인 방향, 취지를 다시 생각해서 사업 방향을 잡아야한다” “장소를 먼저 정해 공모하는 방식으로 하면 좋겠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공공미술의 주인은 시민입니다’라고 박원순 시장의 친필 문구를 새겨넣은 좌대 위 설치 작품에는 ‘태극기 집회’를 알리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
‘오늘’의 시련은 도입 초기부터 이미 충분히 예견됐다. 좌대의 위치가 여러번 변경됐다. 사업 초기 시 소관 부서에선 좌대의 위치로 서울도서관 앞을 제시했지만, 시민 보행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는 광장심의위원회의 지적에 따라 잔디광장 서편으로 자리를 잡았다. 2회 때에는 1회 때 작품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와 더 남쪽으로 옮겼다.
예산도 깎였다. 1ㆍ2회까진 1억 5000만원이었지만, 3회에는 33% 삭감된 1억원이다. 편성 예산이 적다보니 작가들에게 매력적이지 않고, 결국 지난해 3회 공모에선 당선작이 나오지 못했다. 질 좋은 작품이 아니면 시민으로부터 외면 받아 공공미술에 대한 인지도도 떨어지는 등 악순환이 된다. 시는 재공모 일정 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애초 지난해 12월에 재공모 계획을 세우기로 했으나 인사 등이 겹치며 소관 부서에서도 관심에서 멀어졌다. 공공미술의 시범사례로 삼으려던 ‘오늘’이 용두사미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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