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이정아 기자의 바람난 과학] 우주의 비밀도 AI가 푼다
뉴스종합| 2019-05-09 10:51
최근 천문학 연구에서 나타나고 있는 AI 성과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인공지능(AI)은 인류 최대의 혁명이고 ‘연구’를 재정의할 것이다.”

지난해 7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소프트뱅크 월드 2018’ 행사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이 전한 메시지에서 ‘산업’을 ‘연구’로 바꿔봤다.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하루 8시간 연구하는 인간과 24시간 연구하는 AI는 경쟁이 안 된다. 게다가 AI는 인간 능력의 100배, 1만 배, 100만 배 성능으로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데이터를 분석하고 추론한다.

특히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다루는 천문학에서 AI의 성과가 눈에 띄고 있다. 이미 AI는 별과 은하의 모양을 식별해 구분해 내고 있다. 최근에는 한번도 관측된 적 없는 태양의 뒷면의 자기장 영상도 AI가 예측해 만들어냈다. 인간이 놓친 관측 자료에서 외계행성을 찾아낸 것도 AI다. 지난달 인간이 마침내 블랙홀 관측 사진을 손에 넣게 된 데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AI를 전공한 대학원생이 개발한 알고리즘 덕분이었다. 수많은 천문연구가 AI의 힘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AI와 만난 방대한 빅데이터= 구글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진과 미국 오스틴의 텍사스대학 앤드루 밴더버그 박사와 함께 인간이 놓친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외계행성을 찾는 연구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외계행성 신호를 파악하는 새로운 알고리즘도 개발해 1300광년 떨어진 물병자리의 별을 도는 ‘K2-293b’와 1230광년 떨어진 같은 물병자리의 별을 도는 ‘K2-294b’도 새롭게 발견했다. 이는 케플러 우주망원경이 수집한 별 데이터 30만 건을 구글 AI에 접목하면서 가능했다.

이들은 지난 2017년 처음으로 AI에 활용해 7개의 행성을 가진 것으로 밝혀진 ‘케플러-90’ 별에서 8번째 행성도 찾아낸 바 있다. AI 덕분에 우리 태양계처럼 행성 8개를 거느리고 있는 유일한 외계 태양계를 발견하게 됐다.

토성 탐사선 카시니호가 보내왔던 45만3000여 장의 이미지에서 인간이 풀지 못한 토성의 퍼즐도 풀어낸 것도 AI 덕분이다. 인고 왈드만 영국 런던대학 박사는 토성 표면 데이터를 딥러닝에 입력했고 그 결과 토성 표면에서 암모니아가 관측되지 않은 이유를 단 10분 만에 알아냈다. AI 알고리즘으로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고기압성 폭풍이 새롭게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자들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이를 다시 검증하는데는 1년이 걸렸다”고 덧붙였다.

이형목 한국천문연구원장은 “대규모 탐사 시대가 열리면서 자료 생성과 축적이 과거에 비해 훨씬 방대해졌다”면서 “세계적으로 천문연구 분야에 AI가 도입돼 분석 등에 활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천문학자 조력자, AI= 천문학자가 어마어마한 양의 관측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고심하고 당대 최고의 기술을 이용해 해결하는 모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관측 장비가 발달하면서 관측 데이터가 수십, 수백만 건씩 쏟아졌고 이로 인해 방대한 데이터 처리가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천문학자의 연구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천문연구원도 머신러닝(기계학습) 기법을 활용해 은하를 구분하는 데이터 작업을 하고 있다.

신민수 천문연 선임연구원은 “머신러닝 기법은 양질의 데이터를 적정한 수준으로 빠르게 처리한다는 장점이 있다”며 “이를 활용해 별의 밝기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또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은하인지 등을 측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는 지구에서 관측된 적이 없는 태양의 뒷면의 자기장 영상을 새롭게 만들어내기 위해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이라는 AI 기술을 적용한 연구까지 등장했다.

뜨겁게 주목받고 있는 GAN은 우리말로 ‘적대적 생성망’이라고 한다. 데이터의 만들어내는 ‘생성망(Generator)’과 입력 데이터에 대한 진위 판별을 책임지는 ‘판별망(Discriminator)’이라고 불리는 2개의 심층신경망을 서로 경쟁적으로 학습시켜 생성과 판별을 최고 수준까지 발전시키는 AI 기술이다. 가장 진짜 같은 태양 뒷면 자기장 이미지를 가짜로 만들어내는 AI와 가장 진짜같은 태양 뒷면 자기장 가짜 이미지를 감별하는 AI가 서로 경쟁하면서 최고의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연구를 이끈 문용재 경희대 우주탐사학과 교수는 “컴퓨터공학 박사, 위성영상분석기업, 천문연 등 다른 분야와 여러 기관과 협업했기 때문에 가능한 연구성과였다”라며 “AI는 과학 분야의 여러 난제를 풀기 위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천문학 연구에 있어서 AI 기술은 역학적으로 인과관계가 파악되지 않는 지점에서 제한적으로 쓰이고 있다. 관측 데이터의 부정확성과 균질하게 자료를 얻지 못하는 자료 획득 편향성이 알고리즘에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 선임연구원은 “AI는 방대한 데이터에서 특정 데이터를 구별해내거나 연구방법 모델을 시험해보는 용도”라며 “AI는 연구자를 돕는 도구일뿐 AI 자체가 새로운 물리 현상을 증명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dsun@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