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여론조사의 정치학] 국회 정상화 외면하면서…‘% 전쟁’에 빠진 여야
뉴스종합| 2019-05-23 11:36
총선·대선의식, 밴드왜건에 몰입
“이상한 결과” “샘플왜곡” 신경전
족집게 아닌데도 ‘일희일비’
현 판세 알기 힘들어 더 집착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 여자고등학교에서 최근 학생들이 ‘아름다운 선거 당신의 마음을 실어주세요’ 를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대구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대구여고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의식 제고와 올바른 선거문화 확산을 위한 ‘여성 정치 참여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연합]

정치권이 때아닌 ‘퍼센트(%) 전쟁’에 한창이다. 내년의 총선, 나아가 대선 헤게모니 싸움이 불붙었다는 평가다. 국회 정상화를 외면하면서 지지율 경쟁에만 신경을 쓴다는 비판도 이에 뒤따른다.

패스트트랙 지정 이후 여야의 대치정국, 야당과 청와대의 ‘막말 공방’ 등도 따지고보면 ‘% 싸움’이 배경이다. 문재인정부 집권 3년차를 맞아 정치권은 이같이 내년 총선 이후의 정치 지형도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러다보니 청와대로선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에 일희일비하고, 민주당은 물론 한국당 역시 당 지지율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가 나올때마다 여야가 촉각을 기울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자기 당의 지지율이 오를때면 반색을 하다가도, 상대방 당 지지율이 쑥쑥 오르면 거침없이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내년 총선을 향한 의원들의 시선이 집중될수록 당 지지율에 울고 웃는 일은 빈번할 수 밖에 없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최근에도 지지율로 신경전을 벌였다. 논란은 민주당과 한국당 간 지지율 격차가 며칠만에 ‘널뛰기’를 하며 불거졌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6일 밝힌 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과 한국당 지지율은 각각 43.3%와 30.2%였다. 앞서 지난 9일 발표한 주중 집계에서 두 정당의 지지율은 1.6%포인트까지 줄어든 상태였다. 일주일 만에 그 격차가 13.1%포인트로 벌어지면서 음모론이 제기된 것이다.

설왕설래한 것은 정치권이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1.6%포인트의 지지율 격차를 보고 “이상한 결과”라고 했다.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틀뒤 양 정당 지지율 차이가 13.1%포인트까지 벌어지자, 이번엔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샘플 왜곡”이라고 반발했다. 이 대표의 발언 뒤 여론조사 결과가 널뛰기 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케이스는 다르지만 바른미래당 역시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내부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23일 지난 4ㆍ3 보궐선거 때 당 싱크탱크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와 관련, ‘허위 조사’ 의혹을 제기하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조사의뢰서를 냈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기관마다 지지율 차이가 큰 것은 당연한데도, 정치권이 이에 너무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여론조사는 큰 흐름을 보여줄 뿐, 족집게가 아닌데도 지나치게 일희일비한다는 것이다. 특히 총선모드가 가동될 수록 이런 신경전은 치열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 전문가는 “지지율과 관련해 밴드왜건 현상(우세후보 지지율 상승)과 언더독 현상(약한후보 지지율 상승)은 대표적 군중심리”라며 “이를 당으로선 간과할 수 없는 이유가 있기는 하다”고 했다. 최근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 ‘어대황’(어차피 대표는 황교안)과 같은 신조어가 떴고, 실제로 대세에 맞는 결과가 나오는 등 밴드왜건 현상이 더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여론조사에 집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지지기반이 확실한 후보에게 더 호감을 갖는 추세”라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론조사는)추세로 파악하고 수치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본다”며 “하지만 일반인은 이를 신경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 판세를 여론조사기관 지지율 발표 외엔 알기 힘든 점도 여론조사를 둘러싼 신경전의 또다른 배경이다. 여야 모두 지지율을 앞세워 당론을 결정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더욱 여론조사는 정치행위의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이 3차례 남북정상회담을 무리없이 진행한 데는 정부여당의 높은 지지율이 있어 가능했다. 한국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정국’에서 몸을 던져가며 반대 목소리를 낸 것 또한 지지율 상승 기조가 뒷받침했다는 게 중론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지지율이 경마중계처럼 나오지만, 이에 일희일비하는 것 외에 방도가 없다”며 “흐름을 잴 다른 방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여론조사는 모집단과 가장 근접히 표본집단을 추출한 후 중립 표현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읽어내느냐가 관건”이라며 “원칙대로만 하면 꽤 과학적인 방법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여론조사가 너무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선거 직전의 여론조사는 이해하지만, 총선이나 대선을 많이 남겨둔 시점에서 매일 또는 매주 나오는 여론조사는 정치과잉을 낳는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여론조사가 너무 많이 나오다보니 유권자들로선 헷갈리고, 자신의 선택을 방해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다른 전문가는 “각 정당이 지지율에 연연하기 보다는 (국회 정상화 등)큰걸음을 보일때 장기적으로 유권자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20~22일 성인남녀 1511명을 대상으로 정당 지지도를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한 결과, 민주당의 지지도는 3.8%포인트 하락한 38.5%로 집계됐다. 반면 한국당은 1.7%포인트 오른 32.8%를 기록했다. 인용된 여론조사의 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최정호ㆍ이현정ㆍ이원율 기자/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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