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일반
[사회적 대화 무용론]길 막힌 ‘사회적 대화’…현안합의 강요보다 미래의제 설정을
뉴스종합| 2019-05-27 11:32
취약계층 대표자 빠져 식물위원회 전락
한노총 모든 노동자 이해관계 대변 한계
성급한 합의 대신 미래지향적 의제 다뤄야
사회 리더들도 직접 참여 목소리 내야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3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근로자위원인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 3명이 3차 본위원회에 불참한 것과 관련해 대책 등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박태주 상임위원. [연합]

사회적 대화가 지지부진하자 또다시 대화 프로세스를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노동계의 대표성을 높이고, 현안보다는 미래 지향적인 의제를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합의를 강요하기보단 시간을 충분히 두고 논의를 만들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7일 정부와 노동계에 따르면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특별위원회(연금개혁 특위)에는 각 계층을 대변하는 17명의 위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과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와 달리 비사업장 가입자인 노인, 여성, 소상공인대표 등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집단 대표들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식물 상태에 빠진 노사정위를 개편, 참여주체를 확대한 영향이다.

판을 크게 벌려두면서 모든 이해관계를 만족시키는 합의안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여러 의견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일단 합의에만 이른다면 잡음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반면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노동시간제도 개선위원회(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 등 다른 회의체에는 기존처럼 취약계층 위원들이 배제돼 있다. 그 결과 노동시간개선위는 지난 2월 현행 최장 3개월인 탄력근로 단위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는 데 합의했지만 본위원회에서 안건을 최종 의결하지 못했다. 청년ㆍ여성ㆍ비정규직을 대표하는 계층별위원들이 미조직 노동자 이해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본위원회를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당초부터 취약계층을 배제해둔 채 합의 도출을 강제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모든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조직논리에 따라 합의가 불가능한 의제를 던져두고 시간 내 합의하라고 강요한 측면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시간에 제한을 두지 말고 시간을 충분히 주되 최종적인 결정은 정부와 국회가 책임지고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취지서 위원 인적 구성부터 객관성을 갖춰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현재는 결론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인적이 구성돼 있다”고 분석했다.

유연성을 보완해 미래지향적 의제를 선정하고, 사회 리더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흐름이나 트렌드 등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경사노위가 판을 깔아두면 전문가는 쟁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논의 과정에 대통령, 국회의원 등이 직접 참여해 다양한 층위의 목소리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합의를 추구하되 결과에 집착해 조바심내선 안된다”며 “현안보다는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의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의 사례가 모범으로 꼽힌다. 독일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부터 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까지 15년간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산업 4.0, 노동 4.0 등 결과물을 내놨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독일은 정부가 먼저 미래 비전을 세우고, 경제인과 전문가들이 소통하며 산업4.0을 국가프로젝트로 만들었다. 산업계서 만들어진 산업 4.0은 또다시 정부와 시민단체, 노동계의 참여로 검토되고 있다. 이같은 사회적 대화 프로세스는 여전히 온라인 ‘플랫폼 인더스트리 4.0’ 사이트를 통해 진행 중이다. 이와는 별도로 독일 정부는 미래 노동시장 변화에 대처해 노동 4.0이라는 별도의 사회적 대화 플랫폼을 가동시켰다.

장준호 경인교대 교수는 학술지 ‘글로벌정치연구’를 통해 “정부는 설득력 있는 국가미래미전을 제시하고 점차 사회적 대화의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며 “아울러 대표성 있는 사회적 대화의 파트너를 선정하고 경사노위 외 다양한 형태의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정경수 기자/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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