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현장에서] 현대미술과 정치, 그 완벽한 퍼포먼스
라이프| 2019-05-28 17:41
덴마크 작가 콜렉티브 슈퍼플렉스
DMZ인근 도라전망대에 3인용 그네 설치
“예술은 오브제가 아니라 실질적 변화를 담보” 

경기도 파주 도라전망대 앞마당에 설치된 슈퍼플렉스의 작품 `원 투 쓰리 스윙`을 타고 있는 군인들. 정전, 군인, 평화라는 상징이 섞이며 한 편의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사진=이한빛 기자/vicky@]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하나, 둘, 셋, 간다!”

구령이 붙었다. 목소리엔 군기보다 신이 한가득이다. 군복을 입은 앳된 청춘들이 발을 구르자, 그네가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로 차올랐다. 3인 1조가 되어 타는 그네는 중심 잡기가, 또 속력 내기가 쉽지 않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힘차게 흔들린다. 군화 끝에는 북녘의 풍경이 걸린다. 왁자한 웃음소리와 짧은 투덜거림, 감탄사가 바람을 타고 DMZ를 넘어 북으로 흘러갔으리라.

세 명이 같이 타는 독특한 그네가 경기 파주시 도라전망대 앞마당에 설치됐다. 덴마크의 작가 콜렉티브 슈퍼플렉스(SUPERPLEX)의 ‘원 투 쓰리 스윙’이라는 작품이다. 2017년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현대 커미션으로 제작한 것으로 2년만에 한국에 설치됐다. 슈퍼플렉스는 1993년 덴마크왕립예술학교를 다니던 야콥 펭거, 비에른스티에르네 크리스티안센, 라스무스 닐센이 결성했다. 현대 커미션을 제안 받았을 당시, 이들은 공공 공간이던 터바인홀을 어떻게 활성화 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자신들의 트레이드 색상인 주황색 파이프 구조물에 3인용 그네를 설치했다. 슈퍼플렉스를 대표해 한국을 찾은 펭거는 “3이라는 숫자를 택한건 3이 집단을 구성하는 최소단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객들은 이 그네에 올라타 스스로 진자(pendulum)가 됐다. 앞으로 뒤로 흔들리며 행동하는 작품으로 변한 것이다.
3인용 그네도 흥미롭지만 재미난 부분은 주황색 파이프다. 땅에서 솟아올라 그네를 걸 수 있는 봉이 됐다가 다시 땅으로 파고들어가는데, 펜더는 이를 놓고 파이프가 생명체인양 “솟아 올랐다”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그네가 공개된 곳이 스위스 바젤이니, 주황 파이프가 유라시아 대륙 지하를 뚫고 한국 파주까지 먼 여행을 한 셈이다. 처음 작품을 공개했을 당시부터 슈퍼플렉스는 상징적이고 의미가 가득한 장소에 그네가 ‘솟아 올랐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런 면에서 DMZ내 유일한 전망대인 도라전망대는 최적의 장소다.

다만, 핵전쟁을 불사했던 2017년의 정치상황에서는 불가능한 꿈이었다. 2년만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격적 협상이 평화무드를 조성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 과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롤러코스터’와도 같다고 해도 말이다. 더불어 2012년부터 꾸준히 리얼DMZ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와의 만남, 한국-덴마크 수교 60주년이 겹치면서 꿈은 현실이 됐다.

그네타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높이 오르는 순간이다. 반면 가장 조심 해야 할 순간은 착지다. ‘원 투 쓰리 스윙’도 마찬가지다. 셋이 함께 합을 잘 맞춰 내려야 부상없이 내릴 수 있다. 펭거는 “예술은, 단순히 우리가 바라보는 오브제가 아니라 삶과 사회, 시대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자연스레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로드맵이라는 그네에 타고 있는 3명의 지도자가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이들의 합이 잘 맞아 다음 ‘원 투 쓰리 스윙’은 평양에 솟아 나길 바라본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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