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데스크칼럼]일본이 한국을 ‘봉’으로 보는 까닭
뉴스종합| 2019-07-09 15:32
“제가 난생 처음으로 질렀지 뭡니까?”

“뭘요?”“ 신스케요!, 그 잘 나가는 작가 있잖아요?, 책이 뭐더라”

대화 도중 의도치 않게 말이 불쑥 튀어나온 바람에 책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던 그는 얼른 스마트폰 검색을 한 뒤 화면을 보여줬다. ‘이게 정말 사과일까’‘있으려나 서점’ 등으로 데뷔 불과 5,6년 사이에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로 떠오른 요시타케 신스케의 신작 판권경쟁에 뛰어들었던 한 출판사 대표의 얘기다. 신스케의 작품은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눈독을 들일 만 했다. 그러나 규모가 그닥 크지 않은 출판사가 인기 작가의 판권 경쟁에 뛰어든 건 확실히 모험이라 할 만하다.

그는 두 눈 딱 감고 수 천만원을 썼는데, 내로라하는 두어 군데 출판사들은 그 보다 수 천만원을 더 썼다. 그 중 한 곳이 억대 선인세를 내고 가져갔다.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와 함께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3인방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이케이도 준의 최근 화제작 ‘한자와 나오키’를 둘러싼 입찰 경쟁은 더 치열했다. 쟁쟁한 출판사들이 너도 나도 붙었고 눈치싸움을 벌인 끝에 권 당 1 억원, 모두 4억원의 선인세를 지불한 출판사에게 책은 돌아갔다.

4억원이란 본전을 뽑으려면 책을 24만권 팔아야 한다. 이 출판사는 권당 6만권은 쉽게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듯 싶은데, 현재 초반 판매 추이로 봐선 기대에 못미친다. 경합에 참여했던 출판사들은 떨어진걸 오히려 다행이라 여기는 분위기다. 그렇더라도 요즘 출판은 책보다 마케팅이라 예단은 금물이다. 해당 출판사는 드라마 등 다양한 판권을 염두에 뒀을지도 모른다.

일본작가의 작품을 둘러싼 선인세 경쟁은 갈수록 뜨거워지는 모양새다. 인기작가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이렇다할 깊이도 없는 가벼운 에세이가 히트를 치면, 출판사들은 다음 작품을 확보하기 위해 달라붙는다. 그러다 보니 액수가 턱없이 올라가는 일이 벌어진다. ‘선인세 얼마’ 식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신작마다 경쟁을 붙여 더 과열되는 양상이다. 일본이 한국을 봉으로 본다는 말이 나온다.

출판사들이 일본 책에 매달리는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다양한 소재와 기발한 착상 등 놀라울 정도로 책의 다양성을 갖고 있다. 그만큼 폭넓은 작가군이 단단하게 형성돼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일본의 라이트 노벨에 익숙한 한국 젊은 층, 일본 작품 특유의 가벼움도 한몫한다.

반면 한국소설은 좀 답답한 상태다. 소설은 올해 상반기 부진을 면치 못햇다. 지난해 대비 14% 역신장했다. 인문학이 13% 성장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소설은 지난해 21종에서 올 상반기 14종으로 확 줄었는데, 그 중 한국 소설은 4종에 불과하다. 그것도 모두 수년 전 출간된 소설들이다. 대형 작가의 소설이 나오지 않고 있는 데다 독자 취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하반기 들어 조정래 작가와 박상영, 김초엽 등 젊은 작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면서 활기를 띠는 건 다행이다. 소설이 살아야 시장이 산다. 그래야 일본 쏠림도 벗어날 수 있다. 

이윤미 라이프스타일섹션 에디터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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