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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에 갇힌 여성 4인 4색 정체성 찾기
라이프| 2019-07-15 11:42
‘핑크 파사드’전 도잉아트 갤러리 28일까지

김진, 정물, 죽은 자연-Nature Morte-Dead Nature #13, 162x130cm, Oil on canvas, 2015 [도잉아트 제공]

여성예술가들에게 ‘핑크’처럼 애증의 색이 있을까. 사회적 통념으로 받아들여지는 ‘여성성’을 상징하는 핑크는 일부 예술가들에겐 무언의 폭력이기도, 불안이기도 혹은 여성 그 자체이기도 했다.

이러한 핑크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 방배동 도잉아트(dohing art)는 김진, 김찬송, 최성임, 허보리가 참여하는 ‘핑크 파사드’전을 개최한다. 핑크가 여성을 상징한다면 파사드는 건축물의 정면을 의미한다. 여성 그 자체를 정면응시하겠다는 뜻이다. 갤러리측은 “핑크가 가진 한정된 인식을 가로질러 여성의 역할, 가치, 지위,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전시 제목처럼 전시장은 온통 핑크의 물결이다. 폴리에틸렌 망에 담긴 핑크색 플라스틱 공이 천정에서부터 매달렸다.(최성임) 핑크 공들은 관객의 손길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핑크색 물결을 만들어낸다.

허보리 작가는 넥타이를 뜯어 캔버스에 붙이고 그 위에 실로 형상을 만들었다. ‘돼지목살 니들드로잉’, ‘삼겹살 니들드로잉’이라는 이들 작품은 에르메스 넥타이로 만든 것이다. 그런가하면 김진작가는 핑크색 사탕처럼 달콤한 이미지를 선보인다. 사랑스럽기까지 한 동그란 물건의 정체는 생선의 내장이나 부패한 고기를 극대화하거나 크롭한 이미지다. 김찬송 작가는 여성 신체드로잉을 내걸었다. 작가 자신이 모델이 되어 수백번 촬영한 끝에 얻어진 개성이 사라진 이미지를 캔버스에 유화로 그려냈다. 핑크빛이 선연한 인간의 신체만이 적나라하다.

4명 작가의 작품속에선 공통적으로 여성이 처한 이율배반적 상황을 이야기한다. 길들여졌고 길들일 수 밖에 없었던 ‘여성’이라는 이름이 아름다울 수도 때론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안현정 평론가는 “페미니즘 미술하면 1989년 바바라 크루거의 발표한 ‘Your Body Is A Battleground(당신의 몸은 전쟁터다)’가 떠오른다. 1980년대 이후 전개된 페미니즘은 여성주의에 대한 회복과 동시에 자기 정체성에 대한 항거로 전개돼 왔지만, 이 전시는 여성을 피해자가 아닌 ‘주체적 행위자’로 내세움으로써 ‘탈 핑크주의’의 시선을 보여준다. 네 명의 여성작가들은 ‘네오 페미닌’의 시선 속에서 핑크에 대한 다면의 기억들을 환기시킴으로써 풍자적 유희(블랙코미디), 이른바 여성 행동에 대한 새로운 정의(위치)를 질문하도록 한다”고 평했다.

전시도 흥미롭지만 갤러리를 운영하는 세 명의 대표가 모두 여성인 점도 또 다른 관람 포인트다. 정승희 도잉아트 대표는 “여성을 제대로 다루는 전시를 꼭 해야한다는 합의 같은 것이 있었다”며 “편안하고 아름다운 작품의 이면엔 좌절이나 시련이 아닌, ‘핑크’를 극복해낸 예술적 승화가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28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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