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34년 전 연구가 라식 수술에 쓰일 줄 몰랐습니다”
뉴스종합| 2019-07-15 15:38
지난 12일 한국에 방문한 도나 스트리클런드 교수 [한림원 제공]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도나 스트리클런드 교수(60)는 지난해 10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뒤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조용한 성격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그는 호젓한 길가를 홀로 산책하는 즐거움을 각별하게 여겼다.

그러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뒤로 그는 전 세계를 누비며 강연을 열고 연구자를 만나고 있다. “산책은커녕 하루에 10개 이상의 일정을 소화할 때도 있어요.” 그는 머리를 뒤로 젖히며 “노벨상을 받은 뒤로 제 삶은 송두리째 달라졌다”라며 덧붙여 말했다.

그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까지는 34년이 걸렸다. 미국 로체스터대 대학원생이었던 그는 1985년에 지도교수와 함께 강한 에너지를 갖는 고출력 레이저 펄스(CPA) 기술을 개발했다. 이는 기존보다 1000배 강한 극초단 초강력 레이저다. 소위 ‘레이저 망치’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당시만 해도 그는 이 기술이 가지게 될 파급력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학계에서도 이 기술의 가치를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라식 수술과 휴대폰 부품 가공에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는 이 기술은 이제 레이저 펄스를 만드는 표준 기법이 됐다. 지난 12일 한국에 온 그는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어디까지나 100% 이론적으로만 접근한 연구였다”라고 설명했다. 오로지 ‘고출력 비선형 레이저가 단 하나의 원자 상태를 바꿀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만이 단순하면서도 굳건한 그의 연구 목표였다.

▶“물리학이 그저 재밌고 좋아서” =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지식의 퍼즐이에요.” 그는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이어 설명했다. 병을 고치는 의사나 돈을 벌어들이는 기업가가 아닌 과학자가 가지는 역할이 있다는 의미다. 연구과제를 선정할 때 연구 아이디어와 예상 성과를 담은 ‘연구계획서’만 가지고 심사하는 경우가 많아져야 한다고 그가 강조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한국의 연구 시스템을 잘 모른다”고 한 스트리클런드 교수가 의도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그의 말은 과학 연구가 가지는 경제적인 가치나 의학적인 성과를 주요한 심사 기준으로 삼는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를 정곡으로 찌르는 말이었다.

다만 그는 미국의 젊은 과학자 지원프로그램인 ‘슬론 연구 펠로우십’ 지원을 받은 게 큰 도움이 됐다고 언급했다. 단순히 연구비뿐만 아니라 이 상에 따르는 명성을 얻게 되면서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어떤 연구 성과가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다고 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역시 물리학이 좋아서 대학원에 진학했고 무루 지도교수 연구실에서 레이저 연구에 흥미를 느껴 몰입했습니다. 모든 게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노벨상을 바라고 커리어를 이어가면 크게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여성 과학자, 남성과 다른 교육 받는다= 스트리클런드 교수에게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라는 수식어 뿐만 아니라 또다른 이름표가 항상 따라다닌다. 55년 만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여성 과학자’라는 설명이다.

특히 그는 노벨상 수상 당시 부교수 신분이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 당시 세계 최대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도 스트리클런드 교수에 관한 소개 페이지가 없었다. 성 차별 논란이 불거졌던 이유다. 그는 “이미 정년을 보장받은 상황에서 승진 신청을 안 했기 때문으로 개인적인 성 차별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그는 “이는 제 경우만 말한 것이고 다른 여성에게도 차별이 없다는 건 아니다”라며 성차별에 따른 문제가 과학계에서 해소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그는 “(위키피디아 페이지는 없지만) CPA 기술에 대한 페이지가 있고 거기에 내가 발명자로 돼있다”면서도 “성별에 따라 자기 자신의 이력과 성과에 대해 접근하는 데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

남성들은 대개 국제 컨퍼런스 등에 참여하며 자신의 성과를 주변에 알리고 기록을 남기는 반면, 여성들은 경쟁을 벌이거나 자신을 드러내는데 덜 관심을 갖도록 사회적으로 교육을 받았다는 뜻이다.

특히 그는 남학생들은 학교 스포츠 팀에서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데 익숙하지만 여학생들은 그런 교육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차이점을 짚었다. 그는 “북미에서는 의대에 진학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심지어 더 많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이 남녀차별을 느끼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남녀가 동일한 교육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날 국내 언론과의 기자간담회를 마친 스트리클런드 교수와 10여분간 서울대학교 교내를 걸었다. 그런데 그의 발걸음이 빨랐다. “9년 만에 한국에 왔는데 정말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우리집에도 LG전자 가전제품이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이 고향이라 프랑스 말을 조금 할 줄 안다”며 그가 수더분하게 말했다. 차분하게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저는 원래 말도 빠르고 발걸음도 빨라요. 그런데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 위해 스웨덴 국왕과 함께 천천히 걸어야 했어요. 그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그가 쾌활하게 웃으며 전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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