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기사
[문호진의 부동산 터치!]집값 어디로? 베이비부머에 안테나 세워라
부동산| 2019-09-27 09:22

[헤럴드경제=문호진 기자] “베이비부머 발 주택시장 불황이 온다”. 한때 인구학자나 부동산시장 전문가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한 말이다. 1955~1963년에 출생한 베이비부머는 700여만명을 헤아린다. 이들이 현역에서 은퇴하면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집을 팔거나 줄일 거고 쏟아진 주택들이 집값을 바닥으로 끌어내릴 거라는 논리가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웬걸, 베이비부머들의 동선은 전문가들의 예측과는 딴판이었다. 저금리 시대 도래가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다. 2015년 전후 금리가 급격히 떨어지는 시기에 은퇴하다보니 집을 팔아 은행 예금에 넣어놓는 건 의미가 없었다. 대신 그들은 당시 주택가격 대비 전셋값이 60~70%로 오른 상황에 주목, 중소형 아파트를 사서 반전세를 놓았다. 매달 안정적 월세를 챙기는 수익형 부동산에 눈을 뜬 것이다.

베이비부머들은 1980년대 3저 호황, 2000년대 초반 벤처붐 등을 거치며 부를 축적했다. 베이비부머 가운데 86세대(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이들)는 지금도100대 기업 임원의 72%, 20대 국회의원의 44%를 차지하며 시장과 권력의 중심에 있다고 한다. 이들은 60세 정년 연장의 혜택도 누리고 있다. 베이비부머들은 축적된 자산과 저금리 담보대출을 활용해 주택시장의 강력한 매수자로 떠올랐다.

지난 4~5년 간 부동산 시장 활황기에 올라타 자산의 몸집을 키운 베이비부머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신중 모드로 전환했다. 특히 다주택자의 주택 보유 및 매수 의지를 꺾겠다며 종합부동산세를 크게 높인 9·13 대책이후에는 몸을 낮췄다. 정부가 고강도 규제의 종결편으로 도입을 천명한 분양가 상한제가 시장에 미치는 파장도 예의주시했다.

분양가 상한제 이후 공급절벽으로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에 요즘 수도권 청약시장은 이상 과열 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뜨겁다. 견본주택을 방문한 청약 예정자들이 아파트 모형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포스코건설]

최근 주택시장 흐름의 일단에서 베이비부머의 판세분석이 끝나가고 있음을 짐직할 수 있다. 베이비부머들은 ‘분양가 상한제후 집값이 더 오른다’에 베팅하며 다음과 같은 행동지침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분양가 상한제 이후에는 공급 절벽으로 입주 10년이내, 이 가운데 5년이내 신축 아파트는 몸값이 크게 뛸 거다. 다주택 보유세 중과 부담은 증여로 해소한다. 최고 62%의 양도세를 내느니 자녀 증여가 훨씬 낫다. 정부의 공시지가 현실화와 맞물려 세 부담이 더 오르기 전에 증여하자. 한편으로 분양가 상한제 전 밀어내기 분양에서 기회를 포착한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가 분양가를 통제하는 청약시장은 주변시세 보다 수억원 싼 곳이 많아 여전히 매력적이다. 청약에는 우리 20·30대 자녀를 내세우면 될 일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아파트 증여 거래는 1681건을 기록했다. 이는 직전 월(953건) 대비 76%나 증가한 것이다. 아파트는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증여세가 부과되는 만큼 분양가 상한제 이후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물려주자는 판단이 작용한 게 분명하다.

베이비부머들의 ‘정중동’ 행보는 무순위 청약으로 신규 아파트의 미계약분을 사들이는 일명 ‘줍줍’(줍고 또 줍는다는 뜻) 가구의 당첨자 현황에서도 드러난다. 작년부터 올해 7월까지 20개 단지의 무순위 당첨자 2142명 가운데 30대가 916명(42.8%)으로 가장 많았다. 20대도 207명(9.7%)을 기록해 20·30 당첨자가 전체의 52.4%에 달했다. 줍줍 아파트의 상당수가 분양가 9억 이상에 중도금 대출이 제한되는 것을 감안하면 20·30대가 자력으로 분양가를 감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달 서울 주택 매입자 중 30대가 가장 많았던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베이비부머가 그들의 자녀인 에코세대를 지원하면서 주택시장의 기득권을 공고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베이비부머는 에코세대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면서 달라진 투자환경에 대응하고 있다. 다주택 임대사업자로 수익형 부동산의 강자로 군림하다. 자신과 배우자, 자녀가 ‘똘똘한 한 채’를 갖는 방식으로 정부의 보유세 폭탄을 피하고 시세차익도 노린다는 일석이조 전략이다. 부동산시장의 향방을 점치려면 베이비부머의 행보에 촉수와 안테나를 세워야 할 것 같다.

mhj@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