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딸 목소리랑 똑같아서…” 휴대폰 해킹으로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뉴스종합| 2019-10-11 11:10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김모(42) 씨는 최근 딸을 납치했다는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다. 김 씨는 전화를 끊지 말고 200만원을 입금하라는 보이스피싱범의 협박에 못이겨 돈을 입금했다. 김 씨의 딸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보이스피싱범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게된 가족들은 김 씨에게 “왜 딸 목소리도 못알아듣냐”고 답답해 했다. 과연 김 씨가 딸 목소리도 알아듣지 못한 어머니였을까. 전문가들은 보이스피싱범이 실제 딸 목소리를 흉내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어머니가 자식 목소리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 보이스피싱범이 타깃의 목소리를 알았던 것이다.

자녀 납치 협박형 보이스피싱은 수년 전부터 등장했던 고전적인 수법이다. 그러나 최근엔 휴대폰을 해킹해 자녀와의 통화음성 데이터를 확보한 뒤 목소리와 억양까지 똑같이 흉내낸다. 직업, 취미, 친구이름 등 구체적인 정보까지 파악한다. 서울 마포경찰서 윤영석 지능팀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해킹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URL을 통해 해킹을 하거나 앱을 깔게 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드로이드 휴대폰에서 ‘알 수 없는 URL을 함부로 누르지 말라’고 경고를 해도 나이가 많은 분들은 제대로 안읽고 누르는 경우가 많은데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녀 납치 협박형 보이스피싱의 가장 큰 특징은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가 납치됐다는 말을 듣고 놀란 마음에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수법이다. 하지만 최근 이들은 여유있게(?) 전화를 끊게 놔두기도 한다. 대신 해킹 등으로 자녀의 휴대폰 번호까지 알아낸 뒤 부모와 자식이 전화 연결이 안되도록 방해한다. 윤 팀장은 “협박전화를 받은 부모가 일단 끊어보라 하고 아이에게 전화를 할 경우, 아이가 전화를 안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보이스피싱범이 미리 전화를 못받게 자녀에게 전화 폭탄을 계속 돌리는 등 작업을 해놨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협박 전화를 받으면 아이에게 전화하기 보다는 경찰에 먼저 신고하는 것을 추천한다”라고 말했다.

아예 전화 통화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자녀가 있는 부모들을 노리는 경우도 많다. 자녀가 해외로 유학을 갔거나 군대에 있는 경우다.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계 김은정 경위는 “보이스피싱범은 부모가 자식과 전화 연결이 안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 때문에 자녀의 직장 동료, 학교 선생님, 친구 등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미리 파악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전화를 받았을 때는 무조건 주변에 해당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김 경위는 “주변에 얘기하면 아이가 잘못될까봐 전화도 끊지 못하고 혼자 대응하다 피해보는 경우가 많은데 반드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며 “전화 통화를 하면서 시간을 끌며 가까운 지구대 파출소를 방문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메모 등을 통해 대신 신고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