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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13조 ‘펑크’ 금융권에 떠넘기고…너무 안일한 예보
뉴스종합| 2019-10-29 11:24

‘밑빠진 독에 물붓기’

상투적이지만 공적자금 투입을 두고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예금보험공사가 파산저축은행에 지원한 공적자금도 십여년이 지났지만 회수는 절반에 그치고 있다. 금융권은 보험료 부담이 크다며 아우성이고, 보상을 요구하는 저축은행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예금보험공사기 최근 국정감사에 제출한 ‘파산저축은행별 자금지원 및 회수현황’ 자료를 보면 2011년부터 파산한 저축은행에 투입한 금액은 27조 1701억원이다. 현재까지 미회수 금액은 올해 6월 기준 14조 8569억원으로 회수율이 절반 수준이다.

문제는 앞으로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보는 금액이 1조8297억원에 그친다는 점이다. 예보는 13조272억원은 회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별계정 회수 내역을 보면 지난해 말 기준 12조1260억원 중 파산배당금 수령이 11조6060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지난해 회수 실적은 8861억원에 그친다.

그간의 지원내역을 살펴보면 지난해말 기준으로 전체 27조1718억원 가운데 금융소비자들이 받은 보험금과 개산지급금이 3조7053억원이다. 지원금 중 대부분은 출연(22조9873억원)의 형태로, 부실저축은행을 제3자, 또는 예보가 전액 출자한 가교저축은행으로 계약이전 방식으로 정리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후 파산배당금으로 회수할 수 있지만, 예금자보호를 위해 이미 발생한 저축은행 부실을 보전하는데 쓰인 자금은 회수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사실상 못 받게 된 공적자금을 메우는 부담은 금융권 몫이다. 저축은행 특별계정은 2026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데 부보금융회사의 연간 예금보험료 중 45%(저축은행은 100%)를 적립하고 있다. 가뜩이나 예금보험료 인하 요구 목소리가 높은 보험업권 등에서는 불만이 높다. 하지만 금융위원회 당연직인 예보 사장의 위세 앞에 내놓고 큰 소리를 낼 수도 없는 처지다.

예금보험의 역할 자체가 금융 안정을 위한 자금 지원이기 때문에 공적자금 지원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공적자금의 투입 규모, 손실 가능성에 대한 보다 면밀한 분석이 있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남는다. 공적자금 미회수로 인한 예보료 부담은 금융회사를 통해 결국 금융소비자에게까지 미친다.

특히 공적자금 회수에 예보의 절박감이 부족하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캄보디아 캄코시티 문제가 대표적이다. 캄코시티에는 파산한 부산저축은행의 채권 6500억원이 걸려있는데, 채권이 회수되면 피해자에게 총 780억원(배당률 약 12%)을 돌려줄 수 있다. 그러나 사업가 이모 씨가 사업 지분을 돌려달라며 현지에서 낸 소송은 지난 7월 항소심에서도 예보가 패소했다.

이번 국감에서 위성백 예보 사장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패소할 경우 직을 걸고 책임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직을 걸겠다’는 절박감과 함께 선제적 리스크 관리에도 만전을 기할 때다. 사장이 그만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어차피 예보 사장은 기획재정부 국고국장이 돌려가며 맡는 자리가 된 지 오래다.

예보는 사후수습 기관이기 전에 사전에 금융회사의 부실을 감지하고 리스크를 차단하는 것이 본연의 기능이다. 기술적으로는 부보기관인 저축은행 사태도 예보가 일찌감치 감지하고 대응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위성백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금융기관과 금융시장에 대한 적시성있는 정보 수집과 분석력 강화, 취약금융회사에 대한 모니터링 및 현장점검 등을 통해 금융기관 부실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는 예보가 돼야 한다”며 사실상 금융당국에 권한 강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올해 국감에서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와 관련, 예보가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금융상품에 대해서도 예금보험관계 표시 및 설명, 확인이 이뤄지고 있는지 중점 조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현재 임무도 소홀하면서 더 많은 권한을 달라고 조른 셈이 됐다.

물론 예보가 모든 리스크를 관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보가 보다 더 제 임무를 잘 수행한다면 막을 수 있는 금융사고 역시 더 많지 않을까.

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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