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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리스 10조 시장…‘종이를 못 버린다’
뉴스종합| 2019-11-05 11:15

정부가 1967년 최초로 컴퓨터를 사용한 지 52년 만에 각종 증명서와 신분증을 모바일에 담는 ‘디지털 정부’를 선언하고 올해 말부터 본격적인 서비스에 들어간다.

지난 35년 동안 ‘이동통신’ 업무에 주력해온 통신사들도 모바일 전자증명 시장에 진출해 금융권을 중심으로 연내 상용 모델을 출시한다.

각종 행정 서비스와 함께 사용자 접점이 가장 많은 통신·금융 부문에서도 종이 대신 전자문서 기반의 인증 환경이 도입되면서 ‘페이퍼리스(Paperless)’ 사회가 급속도록 확대되고 있다. 각종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등 관련 전자문서산업 시장도 내년 10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외형이 커진 이면에 선제적으로 도입된 주요 생활 밀착형 전자문서 서비스들은 미비한 정책과 뿌리 깊게 박힌 관행으로 사실상 인프라만 구축된 채 사용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관련기사 3면

종이 자원을 절약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정착하기 위해 신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혁신이 추진되고 있지만, 사용자 친화적인 서비스 방식과 제도적인 뒷받침 없이 ‘무늬만 페이퍼리스’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핀테크 기술이 발전하고 간편결제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기존 종이영수증을 전자적 형태로 발행하는 전자영수증(Electronic Receipt)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

2016년 전자문서표준위원회(KEC)에서 제정한 ‘표준 전자영수증’ 지침에 따르면 종이 영수증 없이도 전자영수증만으로도 상품의 교환, 환불, 기타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 이는 지침에 그칠 뿐 실상에서는 전자영수증을 구매처에 제시했을 때 환불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현장 판매자들이 전자영수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뿐더러 부가가치세법 시행령에 전자영수증에 대한 법적 근거가 규정돼 있지 않아 전자영수증 법적 효력도 없는 상태다.

신용카드업계도 전자영수증을 제공하고 있지만 종이영수증과 달리 애플리케이션에 표기된 전자영수증에는 구매한 상품에 대한 세부내역까지 나오지 않아 소비자들이 증빙용으로 이용하는 데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전자결제 업계서는 카카오페이만 전자영수증 서비스를 시작했고, 네이버페이와 NHN 페이코는 법적 근거 마련 여부를 보고 전자영수증 서비스를 출시한다는 입장이다.

디지털 전환(트랜스포메이션)에 기업들도 고도화된 회계 솔루션을 도입하고 전자영수증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지만, 정작 외부감사에서 회계법인들은 여전히 종이 영수증만 증빙 자료로 인증하고 있다.

최근 한국전자문서산업협회 주최로 열린 ‘전자영수증 활성화 방안 세미나에서’도 기업들의 높은 종이영수증 의존도가 지적되며 정부기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이에 협회 관계자는 “현재 과학기술정보통부와 함께 정부 R&D 예산을 사용한 뒤 전자영수증으로 증빙하도록 하는 제도를 검토 중으로 대전 소재 출연연구기관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예산을 배정하는 기획재정부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전통산업인 제지업계가 매출 타격을 우려로 전자영수증 확대에 반대하고 있어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3년째 추진하고 있는 전자처방전은 지난해까지 시범사업 형태로 진행되다 올해 전국 확산을 위한 사업자까지 선정했지만, 1차적으로 이 서비스를 이용할 의사와 약사들로부터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의사들은 자신들의 처방 기록이 전자화 돼 실시간 확인될 수 있다는 점을 꺼려하고 있다.

또 대형병원 인근 약국 이른바 ‘문전약국’ 중심으로 처방전이 전송된 기록이 저장될 경우 병원과 약국 간 담합 소지도 불거질 수 있어 전자처방전이 적극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병원, 약국 이용 빈도가 높은 고연령층이 전자처방전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도 문제로 제기된다.

여기에 개인 의료정보가 담긴 처방전이 전자화돼 무선으로 이동하는 데 있어 개인정보보호법 검토도 수반돼야 한다. 이 같은 이유로 지난해 서울대학병원, 삼성서울병원 등에 전자처방전 솔루션이 시범도입됐지만 인프라만 설치됐고 활용도는 크게 떨어져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제도 관련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전자처방전이 시도되고 있지만 실제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병원, 약국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KISA 관계자는 “병원 종류만해도 종합·중형·의원·요양·치과 등 다양하고 여기에 맞는 전자처방전 사업자도 다 다르다”며 “중형 이상 병원은 원무과 시스템과 키오스크 솔루션을 통째로 손봐야 하는 문제가 있어 전자처방전을 진행하면 할수록 어려운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정태일 기자/killpa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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