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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진의 부동산터치!]‘거리’가 ‘차별’인 집값…급행철도가 격차 메우나
부동산| 2019-11-22 09:35

판교신도시 신분당선 판교역. 북쪽 출구에서 판교테크노벨리로 넘어가는 횡단보도는 매일 아침마다 전철역에서 나와 출근하는 젊은 직장인들로 활기가 넘친다. 판교테크노밸리에는 1270여개의 기업이 둥지를 틀고 7만여명의 IT 인력들이 일하고 있다. 한화테크윈, SK케미칼, 포스코ICT 같은 대기업은 물론 엔씨소프트, NHN, 다음카카오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술혁신 기업이 모여 있다. 판교밸리 내 입주기업의 매출액 합계는 79조3000억원(2017년 기준)을 넘어섰다. 이는 부산(78조원, 2016년)이나 인천(76조원, 2016년)의 지역내 총생산(GRDP)과 맞먹는다.

판교신도시의 활력은 판교역~강남역을 15분 내에 연결하는 급행철도 신분당선이 바탕이 됐다. 신분당선이 서울 강남역과 삼성역 사이 테헤란밸리를 판교로 확장하며 80조원 규모의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새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일자리와 사람이 몰리니 판교역세권 아파트값은 서울 웬만한 아파트를 뺨친다. 백현동 판교푸르지오그랑블 전용 98㎡는 18억5000만원을 줘야 살 수 있다.

판교밸리에서 보듯 시속 100㎞로 달리는 급행철도는 서울 핵심도시의 면적을 수도권으로 확장하는 효과를 낸다. 1~2시간을 들여야 서울로 통근할 수 있었던 수도권 외곽에서 서울역, 광화문, 삼성동, 청량리 등 도심까지 20~30분에 닿을 수 있다면 이미 서울 생활권에 편입되는 셈이다. 예를들어 신안산선(안산~여의도)이 개통(2024년 예정)되면 안산·시흥 지역이 여의도권역으로 편입돼 이 일대 지역총생산이 지금보다 배가될 것이다. 3기 신도시 계획이 말하듯 정부가 서울 주택수요 분산을 위해 핵심도시 주변을 개발하면서 메트로폴리탄(광역도시)을 만드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은 그래서 일면 타당하다. 정부는 이를위해 수도권 GTX 같은 광역교통 건설을 앞당기겠다고 했다. 평소 언론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듣는 김현미 국토부장관도 직접 챙기는 모양새다.

김 장관은 지난 19일 언론 기고에서 “단언컨대, 서울 중심가에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왜 빠르고 편리한 교통망 보급이 복지의 영역인지를. 경기도 일산에서 살아온 지 18년. 수면 시간이 평균 5시간을 넘지 못한다. 수도권 시민은 소득수준과 관련 없이 교통 복지의 긴급 요(要)수요자다. 광역교통 서비스 혁신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라고 감성적 메시지를 던졌다. 철도를 복지로 보는 시각이 인상적이다. 그는 장관 취임후 GTX A노선(동탄~운정) 파주 연장, 신분당선 광교~호매실 연장, GTX C노선(수원~양주 덕정), B노선(인천 송도~남양주 마석) 예타통과 등에 공을 들여 획기적 진전을 이뤘다며 스스로 높은 점수를 줬다. 김 장관은 2030년까지 70분 이상 걸리던 서울 주요 거점까지의 시간을 30분대로 대폭 줄여보겠다고 했다. ‘광역교통 2030’ 플랜이다.

수도권 광역교통망에 대한 김 장관의 의지는 알겠지만 과거의 사례들이 믿음을 희석시킨다. 서울에서 남양주 별내신도시로 연결되는 ‘별내선’은 당초 2013년 개통된다고 했으나 10년이나 늦어져 2023년에나 들어설 예정이다. 위례신도시의 ‘위례 신사선’ 준공도 2013년까지 끝낸다 했으나 2027년으로 14년이 지연됐다. 신안산선도 민자로 전환돼 21년만에야 본궤도에 올랐다.

지난해 말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A) A노선 착공식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 내빈들이 어린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도권 GTX에는 어림잡아 15조원 이상의 돈이 든다. GTX A의 경우 정부 부담이 29%고 민자, 지방비, 광역교통대책분담금 등이 투입된다. 비용분담을 놓고 정부와 지자체, 민자사업자간 갈등도 잦다. 그래도 결국 정부 재정자금이 속도를 좌우한다. 내년 우리나라 예산은 513조5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다. 그런데 철도 도로 등에 쓰이는 SOC 예산액은 22조3000억원으로 4년 전(2015년 24조8000억원)보다 못한 수준이다. 교통은 서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복지라는 김 장관의 외침이 무색해진다. 재원 없는 계획은 ‘희망고문’일 뿐이다. 이래서는 광역교통망의 속도를 내기 어렵다.

수도권의 ‘인구 대비 도시·광역 철도 연장’은 뉴욕, 파리, 런던과 같은 대도시권에 비해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 결과 거리의 ‘차이’는 ‘차별’로 굳어졌다는 게 김 장관의 인식이다. 김 장관의 말대로 거리의 차이가 집값과 일자리, 소득, 교육, 문화수준의 차별을 낳고 있다. 이런 격차를 메우려면 정부의 재정투입이 지금보다 훨씬 과감해야 한다.

선임기자/mh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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