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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보] 매출 260억원에서 30조원으로…글로벌 LG의 초석 다진 故 구자경 회장
뉴스종합| 2019-12-14 13:01

[헤럴드경제=정순식 기자] 14일 94세 일기로 별세한 구인회 창업회장인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명실상부한 LG그룹의 오늘은 만든 장본인이다.

1925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구 명예회장은 본래 선생님이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부인 한인옥씨가 구 명예회장의 제자였다 전해진다.

이후 부친인 구인회 창업회장은 1950년 6남 4녀 중 장남인 구 명예회장을 회사로 불러들인다.

구 명예회장은 부산사범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그룹의 모회사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이사로 취임하며 경영에 발을 들였다.

1999년 8월 구 회장(오른쪽)과 구자경 명예회장(왼쪽)이 담소하고 있는 모습 [LG그룹 제공]

그는 현장 근로자들과 같이 먹고 자며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후 1969년 구인회 창업회장이 별세하면서 LG가의 장남 승계 원칙에 따라 경영을 이어받아 1970년 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당시 그룹 합동이사회에서 구 명예회장은 “선대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인화의 기업이념을 계승, 인화단결과 상호협조를 통해 그룹의 부드러운 기업풍토를 조성하는데 힘쓰고 급속한 확대보다는 내실있는 안정적인 성장에 주력할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구 명예회장은 1970년부터 25년간 그룹을 이끌며 회사를 한국 기업 럭키금성에서 세계적인 기업 LG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인은 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연구개발 투자로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데 특히 주력했다. 그 결과 LG그룹이 모태인 화학과 전자뿐 아니라 정보기술(IT), 부품·소재 등 다양한 영역으로까지 발을 넓힐 수 있었다.

구 명예회장이 재임 기간 설립한 국내외 연구소만 70여개에 이르며 중국, 동남아시아, 동유럽, 미주 지역 등에 LG전자와 LG화학 해외 공장 건설을 추진해 글로벌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총수의 수직적인 리더십에서 벗어나 전문경영인에게 경영 권한을 이양하고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하는 '자율경영체제'를 확립한 것도 구 명예회장의 공로다.

LG그룹은 구 명예회장이 취임한 1970년 매출 260억원에서 1995년 3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1995년 1월 럭키금성 명칭을 LG로 바꾸고 장남인 구본무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기고 물러났다.

구 명예회장은 국토가 작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사람 만이 경쟁력이라는 '강토소국(疆土小國) 기술대국(技術大國)' 철학을 강조했다.

구 명예회장은 퇴임 후에도 이 같은 소신을 갖고 인재육성과 기술개발에 공을 들였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LG연암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연암공업대학과 천안연암대학 등을 지원하고, LG복지재단을 통해 사회공헌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구 명예회장은 1972년 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1982년 한국산악회회장, 1987년 제18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한 이력도 있다.

구 명예회장은 은퇴 후 자연을 가까이하며 지냈다. 부인 하정임 여사는 2008년 1월에 별세했고, 지난해 5월 장남인 구본무 회장까지 먼저 떠나보냈다.

한편 구 명예회장의 장례는 고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최대한 조용하고 차분하게 치르기로 했다.

이에 별도의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하기로 했고, 빈소와 발인 등 구체적인 장례 일정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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