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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도 세입자도…전세 대출규제 ‘우리 어디로…’
부동산| 2020-01-20 11:21

40대 후반의 전문직 김 모씨는 서울 양천구 목동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지만, 강남구 대치동 신축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다. 아들 교육 때문이다. 그러나 김 씨 같이 전세를 낀 시가 9억원이 넘는 집을 보유한 이들은, 20일부터 전세대출이 차단된다. 대치동 전세금은 계약 시점보다 2억원이 올랐는데, 재계약 시 상승분을 대출로 충당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김 씨는 신용 대출을 받거나 반전세로 돌리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더 심각한 이들은 전세금반환대출 한도가 줄어들면서 구입한 주택의 세입자를 내보내기 쉽지 않은 사람들이다.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려면 고가주택을 담보로 전세금반환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새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를 적용하면 대출한도가 전세금 반환액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칫하면 급매로라도 집을 팔아야 한다.

직장인 이 모씨는 3년 전 마포에 전세를 끼고 소위 가능한 돈줄을 모두 모아 ‘영끌’(‘영혼까지 끌어올린다’는 뜻)해 집을 샀다. 거주는 전세 대출을 받아 경기도 광교에 하고 있다. 곧 계약 만기이고 임차인은 나가겠다는데 마포 전세값은 8억원에 달한다. 임차인이 구해지지 않으면 아무리 계산해도 집을 다시 매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 씨는 “갭 투자라고 하니 대단한 투기꾼 같은데, 서울에 무리해서라도 내 집 한 채를 갖고 싶었다”면서 “맞벌이로 열심히 모아서 수년 뒤 들어갈 생각이었다”고 했다.

20일부터 시행되는 전세대출 규제는 시가 9억원을 넘는 고가 1주택자 가운데 소유와 거주를 분리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고가 주택 보유자에 대한 전세대출보증을 모두 막고, 전세 대출자의 고가주택 매입 사실이 적발되면 전세대출을 회수한다. 다만 20일 이전에 이미 고가주택을 보유한 이는 현재 전세대출 만기에 같은 조건으로 대출 보증을 연장할 수 있다.

KB국민은행이 집계한 서울 아파트의 중위 가격은 8억9751만원(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이미 중간값이 고가주택 기준인 9억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 가운데 전세를 끼고 매입한 이들은 모두 규제 대상인 셈이다. 고가주택을 기보유해 전세대출 보증이 연장되더라도, 여러 사정으로 전셋집을 옮기거나 전세값이 올라 대출 증액이 필요한 경우는 금지 대상이다. 전세 보증금은 증가 추세인데 추가 대출이 금지되면, 월세로 이를 충당할 수 밖에 없다. 서울 핵심지의 임대차시장에서 반전세 비중은 서울시 평균보다 높다. 높은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돌려서라도 거주하려는 수요가 높다는 이야기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아파트 전·월세 거래 가운데 월세(준전세·준월세 포함) 월 평균 27.6%로 나타났다. 강남구(33.2%), 서초구(31.8%), 송파구(30.6%) 등 강남 3구는 30%를 넘어섰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강남구 대치동의 래미안대치팰리스는 1월 현재 신고된 전·월세 7건 가운데 1건을 제외하곤 모두 반전세다. 가장 월세를 많이 내는 계약건은 94㎡(이하 전용면적)에 보증금 8억원 월세 250만원에 거래한 건으로 나타났다.

마포구 아현동 래미안푸르지오2단지도 이달 들어 신고된 3건의 전월세 가운데 2건은 월세로 보증금을 충당한다. 84㎡의 경우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210만원에 임대차계약서를 쓰면서 사실상 월세 거래를 하기도 했다.

전세보증금을 올리는 것이 아닌 집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는 더욱 곤란하다. 계약이 종료되면 임차인이 전세금을 반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초구 잠원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양도세 중과를 피하기 위한 실거주 요건이 2년에서 10년으로 강화되면서, 임대차계약 만료 후 직접 거주하려는 집주인이 많다”면서 “예상치 못한 이사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세를 낀 고가주택에 입주하려는 실수요자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정부는 12·16 대책 이전에 집 구입을 마친 사람에 대해 규제지역 내 고가주택을 담보로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한 전세보증금 반환대출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대책 시행 이후 대출을 신청한 경우 LTV 비율은 새 규제를 적용해 9억원까지는 40%를, 9억원 초과분은 20%를 적용한다. 서울 강남지역 뿐 아니라 이른바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강북 대다수 신축 지역에서 시가 14억원을 기준으로 1억원 정도 줄어든다. 강화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까지 적용하면 대출한도는 더 작아질 수 있다. 성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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