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1만㎞ 건너 나의 영웅을 만나러 왔습니다!”
뉴스종합| 2020-01-20 12:01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김유나(당시 19세) 씨에게 2016년 1월 24일(현지시간) 신장과 췌장을 이식받은 미국인 킴벌리 앰버(23·오른쪽) 씨와 그의 어머니 로레나 씨.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제1형 당뇨병’. 미국 여성 킴벌리 엠버(23) 씨가 두 살 때 받은 진단명이다. 어린 앰버 씨의 삶은 늘 고통이 함께했다. 음식 조절, 혈압 체크는 물론 살을 파고드는 주사도 그에게는 일상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아몬드가 든 초콜릿도 사치였다. 병원이 학교보다 더 익숙한 곳이었다.

앰버 씨를 지독히도 괴롭히던 당뇨는 결국 신장결석이라는 또 다른 질병으로 이어졌다. 당시 그의 나이는 18살이었다. 매일 밤 그녀를 괴롭혀 왔던 일상에 8시간 동안 혈액투석기에 매달려야하는 새로운 고통이 추가됐다.

'매일매일이 도전’이던 앰버 씨의 삶을 바꾼 것은 한국인 고 김유나(당시 19세) 씨의 신장과 췌장이었다. 2016년 1월 23일(현지시간)이었다. 제주에서 미국 애리조나로 유학을 떠났던 김 씨는 시험 기간을 맞아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속하며 달려오던 차는 김 씨가 탄 차를 들이박았다. 앞자리 운전석 에어백이 모두 터질 정도의 큰 사고였다. 운전을 하던 사촌 언니가 뒷좌석에 앉아 있는 김 씨를 돌아봤을 때 김 씨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2016년 1월 23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후 6명에게 장기를 기증한 김유나(당시 19세) 씨.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딸의 사고 소식에 김 씨의 부모는 서둘러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긴 시간 불안함을 기도로 버티며 마주한 모습은 뇌사 상태로 의식 없이 호흡기만을 의지한 채 누워 있는 딸의 모습이었다. 긴 고민 끝에 김 씨의 부모는 장기 기증을 결심했다. 엄마가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다고 위로하던 아빠에게 건강을 잘 챙기면서 일하라고 당부하던 살뜰한 맏딸은 사고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

김 씨는 33세의 소아과 의사에게 심장을, 68세 남성에게 폐를, 77세 남성에게 각막을, 12살 남자아이에게 오른쪽 신장을 주었다. 왼쪽 신장과 췌장은 당시 19살이었던 앰버 씨에게 전해졌다.

이식 후 앰버 씨의 삶은 달라졌다. 그는 “날아갈 듯하고 새 사람이 된 기분”이라고 김 씨의 부모에게 보내는 감사 편지에 적었다. 투병 당시 예민했던 성격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주변에서는 “항상 웃는 사람”이라고 앰버 씨를 이야기한다. 건강을 회복 한 후 2018년에는 결혼도 했다. 앰버 씨는 현재 대학에서 물리치료사 준비를 위해 공부하고 있다.

미국에선 뇌사 장기 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이 서로 원할 경우 교류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유가족과 이식인이 서로 만날 수도, 편지를 보낼 수도, 소식을 전할 수도 없다.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서로 간 정보공개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제정된 이 법은 아직도 뇌사 장기 기증인과 이식인 간의 교류를 막는 족쇄가 되고 있다.

20일 앰버 씨는 1만㎞를 건너 그의 영웅인 김 씨의 부모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그는 “유나는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영웅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나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 준 유나의 가족들을 만나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2016년 김 씨의 부모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낸 후 4년 만의 교류다. 김 씨의 부모는 앰버 씨의 편지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앰버 씨의 편지는 장기기증에 대한 자긍심이자 사람들이 딸을 기억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pooh@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