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신년기획 2020 글로벌 재앙 미세먼지 국부보고서 : 일본 하]中 영향권 ‘잿빛도시’ 기타큐슈…외교로 ‘맑은 하늘’ 찾았다
뉴스종합| 2020-01-29 11:24

[기타큐슈(일본)=최준선 기자] 1960년대 일본의 급속 경제성장을 뒷받침 한 기타큐슈(北九州) 시. 지난 17일(현지시간) 찾은 기타큐슈시청 전망대에서는 흰색 연기를 내뿜고 있는 수십 개 굴뚝이 눈에 들어왔다. 기타큐슈는 일본 서쪽 규슈 지방에 자리해, 중국과 가장 가까운 일본 도시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미세먼지와 관련해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만한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야외로 나와 휴대용 측정기로 확인한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단 15㎍/㎥. 한국 예보 기준으로는 ‘좋음’ 수준인데, 기타큐슈시의 연평균 농도는 이보다도 낮다. 기타큐슈시에서 태어나 약 20년 간 거주했다는 일반 시민 와키사키(23) 씨는 “중국에서 넘어온 미세먼지 때문에 휴교령이 내려지기도 했지만, 그것도 수년 전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서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거나 중국 탓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라고 했다.

▶“중국? 탓하기 보다는 지원…2015년 이후 주의보 발령 전무”=기타큐슈시가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는 중국과의 협력이 결정적이었다. 기타큐슈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워 국외 미세먼지가 일본으로 유입되는 초입에 위치해 있다. 중앙 정부와 시, 학계는 이 점을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을 탓하며 갈등 국면을 조성하기보다는 기술 수출과 전문가 파견 등 중국 현지의 대기 오염을 개선하는 데 일조하는 게 일본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데 공감했다. 구체적으로 기타큐슈시는 지난 2014년 중국의 상하이(上海), 톈진(天津), 다이렌(大連) 등 6개 도시와 상호 협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기타큐슈의 대기 환경 전문가를 중국에 파견하는 한편, 일본 내에서는 중국 전문가를 초청해 연수와 공동 연구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같은 움직임에는 시(市) 차원을 넘어선 국가 간 협정이 토대가 됐다. 일본은 26년 전인 1994년 중국과 환경보호협정을 체결했고, 나아가 1996년에는 105억엔에 달하는 무상원조기금을 지원하며 중국에 ‘중일 우호 환경보호센터’를 설립했다. 한국과 중국이 공동 환경기술 실증지원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한 2015년보다 10년 이상이나 빠른 것이다. 기타큐슈시의 도시 간 협력 프로젝트도 이같은 플랫폼 내에서 진행된 것이다. 기타큐슈시는 유일하게 2개 이상 도시와 협력을 맺고 있어 중일 협력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타큐슈시 환경국의 아리마 타카노리 환경국제전략과장은 “일본에서는 정부 출연 기관인 글로벌환경전략연구소(IGES), 중국에서는 우호환경보호센터가 중심이 돼 국가 차원의 도시 간 협력 플랫폼를 운영하고 있다”며 “그 결과 중국 6개 도시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2014년 이후 4년 간 평균 30%가량 줄어드는 효과를 거뒀다”고 강조했다. 특히 6개 협력 도시 중 기타큐슈시와 가까운 상하이와 다이렌의 경우 지난 2017년 미세먼지와 관련한 자국 환경기준(연평균 35㎍/㎥ 이하)를 충족시키는 데 성공했다.

중국의 미세먼지 저감 노력은 기타큐슈 지역 대기환경 개선으로 직결됐다. 기타큐슈시의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2014년 18.2㎍/㎥에 달했지만, 2018년에는 일본 환경기준(15㎍/㎥)보다 낮은 14.0㎍/㎥까지 감소했다. 미세먼지 주의보도 지난 2015년 이후로는 발령된 사례가 단 한 차례에 그친다. 기타큐슈시의 도시 간 협력 프로젝트는 2014년부터 5개년간 추진하는 것으로 계획돼 있었지만, 긍정적 성과를 거뒀다는 양국의 판단에 따라 3년 더 기한을 연장한 상태다.

▶회색에서 녹색으로 변한 도시…30년 전 무형 유산도 한 몫=기타큐슈시가 이처럼 대기환경 개선에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타큐슈에는 1960년대 ‘잿빛 도시’를 20년 만에 ‘녹색 도시’로 바꿔낸 성공 경험이 축적돼 있다.

기타큐슈는 1901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근대 용광로를 갖춘 국영 야하타제철소가 개업한 곳이다. 1960년대 일본의 고속 성장을 뒷받침한 일본 내 4대 공업도시로도 꼽힌다. 그러나 1965년에는 일본 최대의 강하 매진량(입자상 대기오염 물질 중 중력과 비로 인해 지표면으로 강하하는 입자의 양)을 기록했고, 1969년에는 일본 최초 스모그 경보가 발령됐으며, 공업지대 근처 폐쇄성 수역인 도카이만은 대장균조차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로 불렸다.

변화의 계기를 만든 것은 시민이었다. 피부병이나 천식 등 질환을 겪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만보던 기타큐슈시 도바타지구의 부인회가 1965년 이후 행동에 나선 것이다. 부인회는 주변 대학 교수, 학생과 함께 오염 실태 조사를 시작했고, ‘맑은 하늘을 원해요’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도 제작했다. 시민들의 목소리에 정부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기타큐슈시는 중앙 정부의 환경청조차 설치되기 전인 1971년에 공해대책국을 만들었고, 같은해 기타큐슈 공해 방지 조례도 만들어 기업의 환경 오염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기타큐슈의 시민이기도 했던 기업 임직원 또한 시와 공해 방지 협정을 체결하는 등 적극 응했고, 환경 오염 해결에 투입되는 비용의 예산의 30% 상당을 부담했다.

결국 기타큐슈시는 약 20년이 지난 1980년대 들어서 푸른 하늘을 되찾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85년 발간한 환경백서에서 기타큐슈시를 ‘잿빛도시에서 녹색도시로 변모한 도시’로 소개했고, 1990년에는 유엔환경계획(UNEP)으로부터 ‘글로벌500상(償)’을 받았으며, 1992년에는 ‘환경과 개발에 관한 유엔회의’(UNCED)에서 ‘유엔지방자치단체상’을 수상했다. 기타큐슈시 환경국의 소노 준이치 환경산업추진과장은 “20년 만에 푸른 바다와 하늘을 되찾는 과정에서 공해 극복과 관련한 여러 기술력, 행정 노하우, 지식 인프라가 축적됐다”며 “기타큐슈시에서 일어난 실수가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일어나지 않도록 국제 협력에 적극 나서는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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