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상술보다 인술’..이런 의사 보셨어요?
뉴스종합| 2020-02-06 08:12

[헤럴드경제(속초)=박정규 기자]아이로봇( I, Robot)처럼 환자가 대기석에서 한자리씩 엉덩이를 의료진쪽으로 옮겨가면서 치료받은 대학병원 진료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사실 대학병원 뿐 아니라 웬만한 동네 병·의원 가면 로봇처럼 이동하면서 호명을 애타게 기다리는 환자들은 이젠 이를 숙명(宿命)처럼 받아들였다. 로봇이 아닌 인간인데도 말이다. 네이버 블로그에는 의사에 대한 불만 글이 쏟아진다. 사례를 소개하고 울분한다. 좋은의사·나쁜의사·이상한 의사 등 3대 의사 평도 나온다. 의사가 이것저것 검사해보자고 하면 건강걱정보다 “돈빨아 먹을려고 별짓 다한다”는 의혹의 눈길도 보낸다.

속초 이마트 앞 강내과가 인술(仁術)로 유명하다는 동네 소문이 사실인지 취재해봤다. 기자라고 미리 밝히면 혹시 홍보를 노리거나 과장된 포장이 나올까봐 ‘블라인드 취재’ 방식을 선택했다. 기자 신분을 안 알리고 일반 환자처럼 경험하는 방식이다.

일단 강내과에 들어가면 왼쪽 벽에 걸린 ‘환자 권리장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벽면에 각종 시술 홍보(영업)를 하기위해 ‘덕지덕지’ 붙은 일반 병·의원과 사뭇 달랐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환자 권리는 5개, 환자 책임과 의무는 4개다.

‘환자는 인간의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바탕으로 인격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가 첫번째 권리다. 이어 최적의 진료를 받을 권리, 의료서비스에 불만있으면 의견을 표현하고 답변을 듣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도 당연한 말인데도 감동적이다.

강내과에 걸린 환자 권리장전

사실 환자 권리장전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근데 이걸 병원에 붙히고 환자에게 알리는 의사는 몇이나 될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자신의 증상을 제일 잘아는 사람은 바로 환자 본인인데, 말을 끓어버리거나, 자꾸 말한다고 열받은 표정으로 ‘씩씩’ 대는 의사도 봤다. 의사가 아닌 ‘정신병자’같은 의사도 있다는 소식도 자주 들린다. 환자하고 싸우는 의사도 있다.

A의사는 인후염 증상을 앓고있는 기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증상과 치료법에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줬다. 구내염도 있다고 무심코 던진말에 갑자기 뒤에있는 비품실로 들어갔다.

잠시 뒤에 나온 A의사 손에는 의외의 물건이 들려있었다. 치약 1통이다. 자신도 오랫동안 구내염을 앓았는데 이걸로 치료했다며 경험담을 알려줬다. 혹시나 도움이 될 것 같아 구내염을 호소한 환자에게 알려주기위해 비치했다고 했다. 이런 제품은 동네마트를 가보면 많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어떤 제품을 선택하더라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권고한다 .다른 증상도 상담했더니 인터넷도 들여다보고 함께 고민도 한다. 이색적이다.

A의사는 밖에 대기환자가 많다는 점도 중요치않았다. 환자가 만족할때까지 환자 아픔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공유했다. 형편이 어려운 환자에게 500원만 받고 코 주사기와 식염수 1통도 내주고 의료비도 깍아준다.

원실내 권리장전을 몰래 찍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실로 수십 년 만이다. 속초에 이런 의사가 있어 자랑스럽다. A의사는 중앙시장 근처에서 진료하다가 1년여쯤 이마트 속초점 앞에서 개업했다. 시골에 이런 의사도 있다는 사실에 오랫만에 개운함을 느낄 수 있었다. 명의는 인술이 기본이다.

fob14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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