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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저온에서 더 강해지는 ‘첨단합금’ 원리 밝혀졌다
뉴스종합| 2020-02-26 13:05
3D 프린팅법으로 제작된 시험용 엔트로피 함급을 시험하는 모습.[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영화 터미네이터에서는 로봇에 액체질소를 부어 얼린 후 총을 쏴 산산이 부숴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일반적으로 금속이 저온에서 충격에 약한 성질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014년에는 극저온에서 충격에 더욱 강한 일명 ‘엔트로피 합금’이 네이처에 발표돼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연구진이 엔트로피 합금의 저온에서 강한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해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우완측 박사 연구팀이 엔트로피 합금이 저온에서 더욱 강한 비밀은 낮은 적층결함에너지에 있음을 규명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1월호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실증 연구를 통해 엔트로피 합금의 적층결함에너지가 산업에서 흔히 쓰이는 스테인리스강 대비 45%에 불과, 일반적인 금속과는 달리 저온에서 충격에 더 강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일반적으로 금속은 바둑판같은 격자구조의 점에 원소가 박혀 있는 결정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금속에 힘이 과도하게 가해지면 규칙적이던 원소배열의 격자구조가 깨어지면서 불규칙한 적층결함이 생기는데, 적층결함이 발생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적층결함에너지라고 한다.

엔트로피 합금과 같이 적층결함에너지가 낮은 금속은 힘이 가해질 때 원소배열이 대칭적으로 놓이는 쌍정변형이 일어나는 특징이 있다. 쌍정변형을 거치면 금속 내 입자 크기가 더 작아져서 단단해지고 충격에도 훨씬 강해진다. 연구진은 엔트로피 합금의 적층결함에너지가 낮고, 이로 인해 저온일수록 쌍정변형이 더욱 쉽게 나타나 충격에 강해진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규명했다.

이번 연구성과는 원자력연구원과 해외의 첨단 중성자과학연구시설을 활용해 엔트로피 합금의 적층결함에너지를 더욱 정교하게 측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존에는 전자 현미경으로 일일이 관찰하면서 에너지를 측정했다. 이때 소재를 절단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실험적 오류가 발생했으며, 한 번에 머리카락 굵기(100 마이크로 범위) 정도의 작은 부분만 관찰할 수 있어 실험 결과가 불완전했다.

연구진은 중성자 빔을 이용해 원자보다 큰 밀리미터 단위 크기의 소재를 한 번에 측정할 수 있었다. 또한 실시간으로 변형 중인 소재를 측정하면서 변형 공정 중의 결함 변화를 측정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100여회 이상의 반복 실험으로 얻어낸 변형 순간의 에너지 변화 데이터를 확보해 실험의 신뢰도를 높였다.

이번 연구 성과는 향후 연 3조원 규모의 국내 극저온 밸브, LNG 저장탱크 및 액체수소 저온탱크 시장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약 50조에 달하는 극지 해양플랜트 소재부품 사업에 기초과학적 기반지식 및 생산기술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우주·항공, 수소자동차 등의 첨단 미래 에너지 소재분야 등으로 적용분야를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완측 박사는 “첨단 중성자과학 시설을 활용해 기초과학연구 및 실용화 사업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국가 소부장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연구를 지속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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