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김영상의 오지랖] 보건복지부 장관 했거나, 한다는 사람 입 좀 보소
뉴스종합| 2020-02-29 09:01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

지난 수요일(26일) 퇴근때 일이다. 차안에서 라디오방송을 듣는데, 한 시사프로그램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얘기가 한참 거론된다. 유 이사장은 이날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보수진영 새누리당 의원 출신의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에게 “열심히 (코로나를) 막을 생각이 없는 게 아니냐”, “(일을 하는 게) 안보인다”고 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논란을 놓고 패널들이 개인 의견을 활발히 표출한 것이다. 유 이사장 화제가 끝날때쯤 패널 중 하나는 “유 이사장, 입좀 닥치셨으면 합니다”라고 한다. 좀 센 발언이다 싶다. 아니나 다를까, 진행자가 황급히 “그 말은 논란이 될 수 있으니, 유 이사장이 발언을 자제해줬으면 한다는 식으로 정리하시죠”라고 정정해준다. 유 이사장의 말에 거센 비판을 한 것을 보니, 약간은 패널이 보수진영 인사가 아닌가 싶었다. 그런가보다 했다.

그 다음날 저녁 식사를 했다. 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위기감 역시 고조되면서 웬만한 저녁 약속은 다 취소했지만, 절친들과의 만남이어서 그 모임만큼은 강행했다. 대신 마스크 꼭꼭 쓰고 만났다. 처음엔 서로에 대한 안부로 시작됐지만, 당연히 코로나19에 대한 얘기가 테이블에 올려졌다.

친구 하나는 “코로나19로 인해 불신시대를 살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직장 동료나 주변인들 모두 잠재적인 감염 전파자로 볼 수 밖에 없기에 사람 만나기 거북해지고, 자신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꺼려지는 모습이 느껴진단다. 녀석은 “미래영화 보면 방독면 쓰는 모습들이 나오잖아. 앞으로 방독면 써야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바이러스가 옮을까봐 다른 사람 손 잡기도 겁나고, 사무실 문 손잡이에 세균이 있을까봐 꽉 쥐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더 처량한게 우리들의 요즘 현실이다.

어느정도 대화가 무르익었을때, 또다른 친구 하나가 이런 말을 한다. “그런데 말야. 국민건강을 보호하는 주무장관인 보건복지부 장관을 했다는 사람이나, 한다는 사람이나 왜 그 모양인지 몰라. 그 입들 좀 보소. 코로나19 잡을 생각은 안하고, 서로 싸우게 만들고 그러니 좀 한심해 보여서….”

바로 전날 유시민 이사장의 발언과 비슷한 시점에 나온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을 녀석은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보건복지부 장관 했거나, 한다는 사람 입 좀 보소”다.

다 알다시피 유 이사장은 노무현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현직인 박 장관은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코로나19 확산 사태에 대해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었다. 애초부터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한국인이라는 뜻”이라고 했고, 코로나 확산 책임을 자국민에게 전가한다는 여론의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그 친구는 이런 유 전 장관, 박 장관을 ‘복지부 장관을 했다는 사람이나, 한다는 사람’으로 칭한 것이다. 평소 정치 얘기 안하는 친구들이었는데, 이날 여러가지 울분(?)을 토하는 것을 보니, 코로나19 정국에서의 복잡한 민심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박 장관의 국회 발언은 그냥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의 발언이 알려지자마자 미래통합당은 박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동시에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경질을 요구했다.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지난 27일 최고위원회에서 “정부와 민주당에 국민의 분노를 일으키는 망언이 쏟아지고 있다. 그 뻔뻔함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목불인견”이라며 “검역과 방역을 소홀히 해 감염병을 창궐시킨 장관이 자화자찬도 모자라 국민 탓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무능하고 거짓말까지 한 박 장관을 즉각 사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 원내대표는 더불어 박 장관이 국회에서 위증을 했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박 장관은 거짓말도 했다. 대한감염학회가 중국 전역에 대한 입국 금지를 추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며 “그러나 감염학회는 이미 후베이성 제한만으로 부족하다, 위험지역에서 오는 입국자의 제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고 했다. 감염학회가 중국 전역 입금 금지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을 밝혀 그 권고에 따랐다는 박 장관 말이 거짓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미래통합당의 박 장관 경질 요구에 청와대는 “(박 장관)거취를 논의한 적 없다”고 못박긴 했지만, 괜한 잡음을 일으킨 것에 대해선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사실 박 장관의 국회 발언은 여권에서도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 여권 관계자는 “코로나19와 관련해 민감한 시기에 꼭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고 했다. 올해 총선(4월 15일)에 악재가 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나중에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인 이낙연 전 총리가 “당이건 누구건 말조심해야 한다”고 못박은 것도 총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염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왼쪽)과 노건호 씨가 경자년(庚子年) 첫날인 지난 1월 1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주변에서 참배객을 맞이하고 있다. [연합]

박 장관 발언에 대한 사후논란은 그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중국한국인회는 전날 성명을 내고 “박 장관의 발언이 재중 한국 교민의 자존심과 마음에 상처를 줬다며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중국한국인회는 “우리가 항의하는 것은 코로나19 사태에 있어 우리 정부의 정책에 대해 반대하거나 간섭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선을 그으면서 “박 장관의 발언은 한마음으로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교민들에게 큰 실망감과 무력감을 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삶의 터전으로 돌아오는 우리 교민들에 대한 중국 당국의 격리 통제 조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대한 실수”라고 지적했다.

개인적으로 이 성명 중 눈길을 끈 것은 “박 장관은 주무 부서 책임자로서 언어의 선택과 언사가 적절했는지 숙고하길 바란다”는 표현이었다. 중국한국인회 말대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자리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역시 똑같이 보호받아야할 대상이다. 이에 코로나19 극복 방안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코로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 복지부 장관이 오히려 국민과 재중 한국 교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는 게 중국한국인회의 주장인 것이다. 한마디로, 복지부 장관이 신중치 못한 발언으로 경거망동했다는 것이다.

‘신중치 못한 언행’ 뒷말은 유 이사장에게도 뒤따랐다. 유 이사장이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에게 공격성 발언을 쏟아내자, 그 속에 정치적 함의가 다분하다는 비판을 받은 것이다. 유 이사장은 권 대구시장을 향해서는 보수정당(미래통합당) 소속임을 거론하면서 “코로나19를 열심히 막을 생각이 없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나아가 “전염병이 번져 ‘문재인 폐렴’으로 공격하고, 문재인 정권이 친중정권이어서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입국금지를 안해서 나라가 망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며 “이 사람 마음 속에는 정치적인 관심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또 이철우 경북지사를 향해서는 “경북지사 미디어에서 보았는가, 도청에서 기자회견한 것 밖에 못봤다. 경북지사가 보이질 않는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유 이사장이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향해선 우호적인 멘트를 내놨다는 점이다. 박 시장에 대해선 신천지와 관련해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고 했고, 신천지 명단 확보와 강제 역학조사에 나선 이 지사에 대해선 “게임 용어로 본진을 털러 간 것”이라며 격려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였다.

이에 일각에선 “코로나19 국면에서 이를 정쟁 소재로 활용키 위해 유 이사장이 궤변을 늘어놨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래통합당 관계자는 “권영진 대구시장이나 이철우 경북지사나 코로나19 대책을 위해 밤낮없이 뛰고 있는 사람인데, 이들의 노력은 평가절하하고 박원순 시장이나 이재명 지사는 띄워주는 발언을 한 의도가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했다. 보수는 깎아내리고, 진보 진영의 노력만 부각시켰다는 의미다.

야권에선 당장 날선 비판을 내놨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의원(대구 수성구을)은 페이스북을 통해 “유시민 씨는 제발 그 입 좀 다물라, 유 씨의 눈과 머리와 입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혼자만 떠든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무고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으니 그게 문제”라며 “얼마 전에는 조국 전 법무장관 부인 정경심 씨를 두고 궤변을 늘어놓더니, 이번에는 우한 코로나 사태를 두고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같은 당 윤주진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유 이사장이 이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시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지자체장을 순식간에 인간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는 저 세치 혀를 보라, 이것이 문재인 정권의 얼굴이고 입이고 생각”이라며 “‘야당 죽이기’에만 골몰하는 권력집단의 추악한 민낯”이라고 했다.

여권에서도 유 이사장 발언에 탐탁치 않은 분위기를 보였다. 괜히 분란만 일으킨다는 게 중론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 이사장의 말은 여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며 “지금은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얘기할 때가 아니라 한마음 한뜻으로 코로나19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때”라고 했다. ‘유시민발(發)’ 코로나 국면 발언에 곱잖은 시선을 던진 것이다.

지난 한주간, 유 이사장과 박 장관이 어쨌든 여권에게 상당한 부담을 준 것은 확실해 보인다. 온국민이 경계령을 내리고 있는 코로나19 국면에서 보건복지부 전·현직 장관이 나란히 금주의 ‘트러블 메이커’로 등극한 것은 분명하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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