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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폭등 때 10대 20대는 강남으로 이사…왜?
뉴스종합| 2020-03-05 09:50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강남이 젊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거주자 중 10대와 20대가 증가세인 것으로 확인됐다. 부자 동네일수록 자금 여력이 충분한 50대, 60대가 많아 고령화 현상이 나타난다는 상식과 정반대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강남3구 인구는 모두 165만1956명(강남구 54만5169명·서초구 43만826명·송파구 67만5961명)으로 전년 대비 4514명 늘었다. 총 28만2165명이 전입했고, 27만7651명이 전출했다. 강남3구 순이동(총전입에서 총전출을 뺀 수)이 증가한 건 2014년(8538명) 이후 5년 만이다.

지난해 서울 인구는 972만9107명으로 전년 대비 4만9588명 감소했다. 서울 25개 구 중 인구가 증가한 곳은 송파구(6972명), 강동구(7809명), 강남구(1821명) 등 강남권과 성동구(6672명), 구로구(1125명), 중구(239명) 뿐이다.

이재국 금융연수원 교수는 “인구가 감소하는 서울에서도 일자리가 많고 새 집이 늘어나는 지역은 사람이 몰린다”며 “강남은 우리나라에서 일자리나 교육 및 문화 시설 등에서 가장 뛰어난데, 최근 재건축 입주도 많아 인구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강남 인구는 최근 5년 감소세였다. 강남3구 거주자는 2018년에만 전년대비 2만4448명 주는 등 5년 내내 매년 2만명 전후씩 빠졌다. 그러다 최근 강남권에 일부 재건축 단지가 입주하면서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 특히 송파구가 강남권 거주자 증가를 주도했다. 지난해만 12만3273명이 전입하고, 11만6301명이 전출했다. 9510가구 규모 ‘헬리오시티’ 입주 효과가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강남권 인구 변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건 10대와 20대다. 모든 연령대에서 순이동이 늘어난 건 10대와 20대 뿐이다. 지난해 강남3구에 10대는 1512명, 20대는 6372명 증가했다. 이들은 특히 집값이 급등한 최근 3년 새 많이 늘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강남3구에 10대는 1529명, 20대는 1만1533명 많아졌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10대에서도 중학교 들어가기 직전인 10~14세와 20대 중에선 직장 생활을 막 시작하는 25~29세의 강남 전입 추세가 뚜렷하다”며 “10대는 교육, 20대는 직장 수요가 많았던 것”이라고 추정했다.

젊은층이 몰리면서 고령인구 비율은 낮아졌다. 지난해 기준 강남구(13.00%), 서초구(13.24%), 송파구(12.90%) 모두 고령인구 비율이 13% 전후다. 서울 평균(15.20%)보다 2%포인트 이상 낮다. 평균 연령도 마찬가지다. 강남3구에 거주하는 인구의 평균 연령은 2018년 기준 41세로 조사됐다. 서울 평균(42세) 보다 한살 어리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자금 여력이 있는 기성세대가 아닌 청년세대의 강남 진입이 늘어나는 건 한국의 특이한 현실”이라며 “임대로라도 무조건 강남에 거주하려는 젊은층이 많기 때문에 강남은 서울 다른 지역보다 젊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 송파구 아파트 밀집지역. [헤럴드경제DB]

jumpcut@heraldcorp.com

〈'강남 집주인' 된 20대는 누구〉

“돈 있고 나이 지긋한 중장년층이 많을 것 같았죠?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더 오고 싶어해요” (서초구 반포동 A공인중개사)

지난해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3구 모두에서 순이동 인구가 늘어난 연령층은 20대였다. 특히 서초·송파구는 각각 최근 10년, 5년 연속 주거지를 찾아 전입한 20대가 전출한 20대보다 많았다.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 일대 공인중개사 등의 말을 종합하면 이들 20대는 강남3구 또는 성남 판교, 수원 등으로의 출퇴근을 고려해 인근 빌라, 오피스텔 등에서 전·월세살이를 하는 사례가 많다. 드물긴 하지만, 부모의 도움이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해 집주인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9월 분양한 강남구 삼성동 래미안라클래시 견본주택 내부 모습 [헤럴드경제DB]

5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강남3구에서 이뤄진 아파트 매매거래 1만3388건 중 20대 이하의 매입건수는 217건으로 1.6%를 차지했다. 서울 전체에서 이뤄진 아파트 매매거래(7만1734건)에서 20대 이하의 매입건수(2155건)의 비중이 3%인 것과 비교하면 다소 낮은 수준이다. 이 통계는 증여에 따른 거래나 분양받은 새 아파트 입주에 따른 소유권 이전은 제외된다.

강남구 개포동·서초구 반포동 일대 공인중개사들은 부모 도움 없이 20대 명의로 아파트를 계약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VIP 자산관리를 담당하는 업계 관계자도 “현금부자인 부모에게 일부 지원을 받더라도 대출을 받고 전세를 끼는 등 영끌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증여세 면세한도인 5000만원에 자기자금, 회사 대출 등으로 3억원을 맞춰 갭투자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세청을 통해 공개된 사례만 보더라도, 한 20대는 서초구에서 10억원 상당 아파트를 매수하면서 자기자금 1억원, 금융기관 대출 4억5000만원을 이용했다. 나머지 4억5000만원은 부모를 임차인으로 들여 전세보증금을 받아 충당했다. 부모가 자녀에게 시세 대비 수억원 낮은 가격에 집을 판 사례도 있다.

또 강남에 살던 부모가 은퇴한 뒤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그 집을 증여받아 강남에 자리 잡게 된 20대도 있다. 자산관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산가 사이에서는 집값이 더 뛰기 전에 물려줘 절세 효과를 보겠다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말했다.

임대로 머물며 강남권 청약을 노리는 ‘대기상태’인 20대도 있다. 실제 지난해 강남권에서 분양한 서초구 방배동 ‘방배그랑자이’,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포레센트’ 등의 무순위청약 결과, 20대는 각각 전체 당첨자 84명 중 5명, 20명 중 1명이었다. 두 단지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각각 4687만원, 4569만원이었다. 지난해 9월 분양한 강남구 삼성동 ‘래미안라클래시’, 역삼동 ‘역삼센트럴아이파크’ 등 견본주택에서 만난 20대들은 “청약가점은 안 되더라도 일단 접수해보겠다”고 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두 단지에서는 20대 당첨자가 각 1명씩 나왔다. 분양가가 9억원 이상으로 중도금 대출이 제한되는 단지임에도 20대가 찾는다는 것은 ‘금수저 청약’이 적지 않다는 것으로도 해석됐다.

양영경 기자/y2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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