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저먼’ 주광남의 원적 獨상트 오틸리엔수도원 기증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실태조사, 민속박 보존처리 합작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6.25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국내 살림살이는 매우 피폐해졌고,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의 고민도 깊어졌다.
살림이야 사랑을 기반으로 열심히 일하면 입에 풀질하고, 비가새는 판자집에 새우잠을 잔대도 부러울게 없지만, 당장 혼례 때 입을 옷 조차 마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혼례용 관복을 구할 수 없자, 민간에서 간소화한 예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혼례용 단령이라 불렀다. 이 옷은 겉감만 비단으로 하고, 안감은 1960년대에 유행한 인조비단(비스코스레이온)을 썼다.
가난했던 시절, 아이가 보리밥이 지겹다며 투정을 부리자, 밥그릇 맨 위만 쌀밥으로 바르고, 그 아래 모두 보리밥으로 채웠던 당시 밥상 풍경과 결코 무관치 않은 컨셉트이다.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의 기증으로 고국으로 돌아온 〈혼례용 단령〉 앞면 |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의 기증으로 고국으로 돌아온 〈혼례용 단령〉 뒷면 |
이 개량화된 복식은 생활의 주름이 펴지면서, ‘아픈 기억’ 같은 것이라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복식사 전문가들은 “오늘날 국내에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아 희소가치가 있다”고 평했다.
1959년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에서 우리나라 왜관수도원(경북 칠곡군)으로 파견된 독일인 보나벤투라 슈스터 수사(Br. Bonaventura Schuster, 한국명 주광남)는 버려진 혼례용 단령을 수집했다. 그로서는 사랑하는 한국에서의 추억을 간직할 수많은 징표 중 하나였다.
한국에 거의 없는 이 혼례용 단령이 50년만에 귀환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최응천)은 지난 2월4일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 소장 ‘혼례용 단령’을 기증 받아 최근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윤성용)에 인계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에 돌아온 혼례용 단령은 재단이 2016년부터 2년 동안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 실태조사를 진행한 후, 2018년에 국내로 들여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보존처리를 마친 단령 두 점 중 한 점이다.
테오필 가우스(Theophil Gaus)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의 선교박물관장은 지난해 12월 이 단령의 유물상태를 고려하여 한국에서 연구 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재단에 전하고, 올해 2월 단령을 재단으로 정식 기증했다.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은 2018년 조선시대 보군이 입었던 면피갑을 국내에 기증한 데 이어서 혼례용 단령을 기증, 모범적인 문화재 반환 사례를 남겼다.
한국인이고자 했던 독일인 주광남은 1984년에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으로 복귀하고 나서 1987년에선교박물관에 이 단령을 기증했으며, 1990년에 다시 왜관수도원으로 돌아와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 주광남 수사의 한국 사랑은 ‘비정상회담’ 독일 대표 다니엘 린네만 보다 크면 컸지 작지는 않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이 단령이 1960년대 민간 혼례복에 대한 연구 등에 활용될 수 있도록 주광남(보나 벤투라) 수사가 소속된 왜관수도원(박현동 아빠스) 측과 협의해 이 단령을 보존처리한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유물을 인계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오준석 학예연구관은 “전시로 인해 직사광선에 장기간 노출되었고 현지 수장고 시설이 열악해 직물 손상이 매우 심했다”며 “앞으로 1960년대 혼례복 연구자료로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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