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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용의 화식열전] 금융위기 넘어 대공황 연상케…7가지 현상과 시장대응 전략
뉴스종합| 2020-03-13 10:17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지금까지의 경제위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예측불허다. 수요와 공급의 동시 멈춤, 자산거품 붕괴,신용위기, 외환위기, 재정위기 등이 모두 가능한 상황이다. 그 동안 내재했던 경제와 정치의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터지는 모습이다. 어찌보면 코로나19는 기폭제일 뿐이다. 양극화로 빚어진 사회적 갈등, 그리고 권력에의 탐욕과 이기심이 위기를 더욱 키우는 모습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정도로는 부족하다. 아직도 원인은 불분명하지만, 세계 2차 대전으로 귀결된 대공황(Great depression)을 떠올리게 한다. 현재 상황에서 이해해야 할 현상 7가지와 향후 시장 대응 전략 2가지를 살펴보자.

#1. 잔뜩 부푼 유동성 거품…빠르고 가파르게 무너진다=유동성의 힘으로 글로벌 증시가 잔뜩 오른 상황에서 터졌다. 먼저 방아쇠를 당기는(trigger), 먼저 팔고 나가는 쪽이 좀 더많은 실현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상장지수펀드(ETF) 등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한 스마트 자금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 매매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다.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Inverse), 그것도 차입으로 배율을 높인 레버리지(leverage) 상품도 흔하다. 하락이 하락을 부르는 구조다.

미국 S&P500이 약세장(bear market, 고점 대비 20% 하락)에 진입한 기간은 단 보름이다. 가장 짧았던 대공황 때의 42일을 압도하는 속도다. 빠르고 깊은 하락이 나타나는 이유다.

#2. 실물 파장 파악불가=일단 출발은 경제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금융시장이다. 다음은 실물경제다. 3월말 4월초 나올 경제지표와 기업실적이 중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한 1차 피해 집계가 나와야 응급 대응도 가능하다. 문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피해가 깊어서 가계과 기업의 생존이 위협받는 경우다. 현재로서는 가늠이 쉽지 않다. 긴급자금을 빌려도 경제활동이 정상화되지 못하면 빚 부담만 더 커지게 된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위기 가능성이다. 돈을 빌려준 쪽도 부실 부담이 커진다. 실물과 금융의 위기가 겹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3. 신흥국 외환위기 가능성도=안전 선호로 극단적 달러강세가 이뤄지면 외환부분도 타격을 입게 된다. 우리나라는 순채권국인데다 외환보유고가 비교적 많지만, 수출 타격이 현실화되면 달러 수급에도 차질이 빚어진다. 그리고 이는 다시 달러 가수요를 촉발, 외환시장 혼란과 외국인의 이탈을 가져올 수 있다. 외환보유고가 아무리 많아도 일시에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는 걸 버텨낼 수는 없다. 우리보다 경제펀더멘털이 약하고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시아 국가의 외환위기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4. 약효 끝난 초저금리=11년간 돈 풀기는 경제가 덜컹거릴 때마다 ‘만병통치약’이었다. 만성적인 저성장과 양극화 심화, 빚에 대한 의존도 상승이라는 그림자에도 불구하고, 자산가격이 크게 오르며 경제는 보기 좋게 포장됐다. 빚에 의존한 탓에 금리가 오르면 쉽게 흔들리는 구조가 됐음을 간과했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규제 강화로 미국의 레버리지론, 중국의 그림자 금융 등 전통적인 형태가 아닌 빚이 급증한 점도 부담이다. 은행 부실은 공적자금 투입으로 막을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게 퍼져 있는 빚이 부실화될 경우 막을 대책이 마땅치 않다.

#5. 재정위기 가능성=그나마 효과가 어느정도 예상되는 대책이 재정정책이다. 코로나19로 경제가 멈춰서면서 가계는 생존을, 기업은 유지를 위한 비용이 시급해졌다. 정부가 직접 돈을 지급하는 방법과 세금감면 등으로 간접적인 도움을 주는 방법이 가능하다. 전자는 재정부담이 크고, 후자는 불평등 문제를 야기한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비용부담도 변수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높아 재정건전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재정지출을 갑자기 늘렸을 때, 신용도 하락으로 국채 상환이 어려워지며 재정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6. 정치의 위기…권력 탐욕=어째든 재정정책이라도 펼치려면 내부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정치가 위기다. 행정부가 재정을 집행하려면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마침 선거가 코앞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집권당 승리도 어렵다. 여야 합의가 쉽지 않다. 지금 미국이 그렇다.

유럽도 가장 재정이 튼튼한 독일이 돈을 풀어야 하는데, 단일 통화권이어서 그 혜택이 유로존 다른 국가에까지 미칠 수 있다. 20년간 집권한 메르켈 총리가 내년에 물어난다. 독일 정치권 입장에서 다른 나라도 도울 재정정책을 펼치기 쉽지 않다. 반면 유로존 국가들은 유로 약세로 수출 잘 될 때 큰 이득을 본 독일인데, 어려운 때에는 외면한다며 불만이다.

유가 전쟁 중인 사우디와 러시아도 정치적 배경이 있다.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최근 또다시 왕족 숙청에 나서며 등극에 앞서 권력 기반을 다지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구 소련의 스탈린을 넘어서는 초장기 집권을 위한 국민투표를 준비 중이다. 양국간 타협이 쉽지 않다.

중국도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을 위해 미국과의 대결에서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다. 일본은 도쿄 올림픽이 좌초되면 아베 총리의 집권이 위태로울 수 있어 코로나19 대책에 미온적이다. 국내 사정도 비슷하다. 경제난은 여당에 악재다. 4월 총선은 차기 대선의 전초전이다.

#7. 분열된 세계…공조 실종=2008년 금융위기 때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글로벌 정책 공조가 비교적 잘 이뤄졌다. 현재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거의 모든 국가와 대립 각을 세우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은 탈 세계화(de globalization)의 서막이었다. 이젠 각국 모두 ‘나만 잘 살자’다. 코로나19로 국가간 교류 단절이 잇따르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경계도 높아졌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원유 전쟁도 좋은 사례다.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미국 셰일가스를 짓누르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가 벌이는 점유율 경쟁이다. 셰일 가스는 현재 미국 제조업의 가장 약한 고리다.

▶언젠가 반등은 있겠지만=오랜 상승장 끝에 찾아온 폭락이어서 개인투자자들의 저가매수 의지가 높다. 하지만 바닥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아무리 저가매수라고 해도 출혈이 너무 클 수 있다. 자칫 외국인이 파는 주식을 받아주는 역할만 할 수 있다.

현재 진행되는 충격은 1차 충격에서 2차 충격으로 넘어가는 단계다.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고, 각국 정부가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별무신통이란 평가를 받으며 투매가 나타나는 상황이다. 1분기 지표 확인 후 가격(valuation)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 일시 진정 또는 추가 하락이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전까지는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장이 될 가능성이크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2009년 2월 미국의 종합대책이 나온 후에야 시장이 반등했다.

▶혁신 없이는 V자 반등 어려울 수=2008년 폭락장 이후 빠른 반등이 가능했던 이유는 적극적인 돈 풀기와, 중국의 소비, 그리고 미국의 애플과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혁신이 함께 작용한 덕분이다. 이는 지난 11년간 증시가 가장 많이 오른 곳은 돈을 가장 많이 풀고, 모바일 혁신이 활발했던 곳이 미국이란 점에서 확인된다. 이번에도 인공지능이나 IT나 헬스케어 등 유망한 미래 분야에서 성과가 나와야 강한 반등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 돈은 이미 많이 풀려 더 풀 여지가 적다. 혁신이 없다면 반등의 강도는 이전보다 약할 수 있다. 반등하는 자산과 그렇지 못한 자산간 양극화도 극명할 가능성이 크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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